[경제시평-김종걸] 개혁보다 감동이 먼저

입력 2014-12-31 02:20

몇 년 전 필자는 지역발전을 주제로 삼아 지구촌을 헤맨 적이 있다. 이유는 기존의 한국경제 성장 모델에 대한 실망과 불편함 때문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주민 행복을 중심으로 사고하며, 대기업의 낙수효과가 아니라 주민 참여를 통한 발전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북부, 그 척박한 땅에서도 지역의 청년들은 꽤 살 만한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부는 무엇을 해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항공사진 하나를 보여주며 런던은 저 지평선 너머에 있을 뿐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지역발전의 성공 모델이라 일컬어지는 스페인의 빌바오(Bilbao), 이탈리아의 트렌티노(Trentino)에서도 중앙정부 혹은 주정부의 지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조직하고, 지역의 가용한 자원을 모두 가동시키는 ‘운동’이 먼저였다.

일본에서도 잘하는 곳은 많았다. 도쿄와 가나가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생활클럽생협의 경우가 그랬다.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한 도쿄생활클럽생협(1968년)이 만들어지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로자협동조합이 설립(1982년)된다. 이후 지역의 간병·육아 등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한 복지생협(1992년)이 만들어지고, 다시 이를 운영하기 위한 근로자협동조합이 창설된다. 친환경 소비, 복지사업, 일자리 창출이 지역 단위에서 서로 연계되며 발전하는 것이다.

필리핀 마닐라의 슬럼가에서도 흥겨운 작업장을 보았다. 십시일반으로 생수를 제조하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그 수익금 중 일부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한다. 지역의 자원봉사자는 어린 아이들 독서 지도에 열심이었다. 학생 2명에게 매년 중학교 진학을 위한 장학금도 지급한다. 그냥 놔두면 비행 청소년이 될지도 모르는 빈민가 어린이들이 제대로 커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도 이러한 사례는 많았다. 가령 충남 홍성군 풀무원학교 주변으로 훌륭한 마을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도서관, 마을목공소, 마을연구소, 마을출판사 등 정부 지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구어낸 아름다운 결과였다. 강원도 원주의 활동가들도 참 잘하고 있었다. 사회적경제 지원 조직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공동의 경제사업을 확대하며 협동기금도 조성했다. 가령 2009년 설립된 장애인 고용 떡공장 ‘시루봉’의 총 출자금 3400만원은 원주한살림 등 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의해 출자된다. 생산된 떡은 가톨릭농민회, 원주한살림, 상지대생협, 원주생협 등에서 판매된다. 필요한 원재료 또한 이들 조직을 통해 조달된다, 지역순환경제의 좋은 모델인 것이다.

필자는 마을 단위의 새로운 성공은 정부 지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주민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 지역의 자원을 재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 나가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었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노력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사회에서 올해 내내 듣는 것이 ‘개혁’이라는 단어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도 ‘개혁’이었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규제개혁 등 ‘개혁’은 내년에도 최우선 과제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안 보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나 칭찬보다는 거의 모든 국민이 개혁의 대상이 되며 그래서 위축된다.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다. 당근과 채찍보다는 감동과 윤리적 결단에 의해 움직인다. 생각해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많은 성공한 마을들의 특징은 사람들의 참여를 엮어갔다는 점이다. 개혁이 필요할 때에는 소탈한 리더십과 민주적인 의사결정 속에 모두가 참여하는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우리의 ‘개혁’에는 어딘지 위화감이 느껴진다. 흥겹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안 선다. 감동 없는 메마른 구호의 메아리만 들린다. 이래서는 개혁이 성공할 리 만무하다. 누군가는 신년 벽두에 곰곰이 되살펴봐야 할 일이다.

김종걸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