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A씨(49·여)는 석 달 뒤면 2년의 근로 계약기간이 끝난다. A씨의 바람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앞으로 2년 정도만 더 일하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은 꿈꾸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일하고 싶다는 A씨의 꿈이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 현행법상 기간제 근로계약은 2년 이후 회사가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주지 않는 한 더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을 바랐던 장그래와 정규직 전환을 애초에 포기한 A씨의 바람은 다르다. 정부가 29일 기간제 사용기간을 최대 4년까지 늘릴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을 담아 제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정규직 전환을 애당초 포기한 A씨 같은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2년)을 없애 달라고 요구해 온 기업의 바람도 일정부분 반영됐다. 그러나 회사의 일원으로서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하는 장그래 같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 해법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당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한 축인 노동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책’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앞으로 논의 과정에 난항을 예고했다.
◇장그래 ‘방지’법인가, 장그래 ‘양산’법인가=정부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사용기한을 기존 2년에서 본인이 원할 경우 1∼2년까지 더 연장할 수 있게 하자는 안을 내놓으면서 기간제 근로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고용노동부는 학계 전문가에게 의뢰해 기간제 재직자와 기간제 경험 구직자 등 11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꼴로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되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계약 종료 시 금전보상을 하는 방안’을 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이날 밝힌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는 정부와 전혀 다르다.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조합원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기간제 노동자 사용 연장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기간제 근로기간 확대 방안이 기업의 정규직 회피수단”이라고 우려했다. ‘장그래 방지’법이 아니라 ‘장그래 양산’법이라는 것이다.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까지 늘릴 수 있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 ‘일의 숙련도’가 높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쓸 수 있어 정규직으로 뽑을 인원조차 비정규직으로 뽑게 된다는 게 노동계의 우려다. 민주노총은 아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안은 당장 철폐해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파견근로의 대상과 업종 제한에 대한 규제를 완화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노동계 반발이 심하다. 정부는 현재 32개로 제한된 파견 허용 대상에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대상으로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파견규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10명 중 3명이 비정규직·처우 차별 여전…근본 대책은 안 보여=정부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도 높다. 10명 중 3명이 비정규직 근로자인 국내 노동시장의 비정상적 구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실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8월 현재 비정규직은 607만7000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32.4%를 차지한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등 처우 차별도 심각하지만 이를 해결할 근본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4년까지 비정규직 연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정규직 전환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차별 금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이 없는 한 현행 유지에 그치는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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