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인 김모(31·여)씨는 복직 9개월 전부터 서울 서초구의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 3곳을 알아봤다. 대기 순번은 ‘689번’ ‘515번’ ‘322번’이었다. 결원은 1년에 많아야 1∼2명 생긴다고 했다. 복직 한 달을 앞두고 마음이 급해진 김씨는 결국 오후 5시까지 봐주는 민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다.
김씨는 최근 베이비시터를 구하고 있다. 퇴근해 집에 도착하는 오후 8∼9시까지 3∼4시간 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다. 그는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봐주는 데가 국공립 어린이집뿐이라 계속 대기를 걸어놓고는 있다”면서도 “대기 순번 689번은 산술적으로 689년 기다리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는 매년 어린이집을 늘린다고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은 17만50명에 그친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6세 인구의 5.2%에 불과하다.
서울은 인구 대비 국공립 어린이집 공급률이 10.5%로 가장 높다. 하지만 서울 사정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국민일보 취재진이 29일 서울시보육포털에 등록된 서울 지역 860개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과 대기인원을 전부 조사한 결과 대기인원 500명이 넘는 곳은 529곳(61.5%)에 이르렀다. 대기인원이 2000명을 넘는 곳도 43곳(0.05%)나 됐다.
서초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은 0∼6세 정원이 198명인데 4186명이 대기 중이다. 0세반에만 1907명이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송파구에는 정원(70명)의 46.7배나 되는 3270명이 대기 중인 국공립 어린이집도 있다.
대기인원이 2000명을 넘는 송파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여러 곳에 대기 인원을 걸어놓기 때문에 중복되는 ‘허수’도 많지만 그만큼 국공립 어린이집을 원하는 학부모가 많다는 뜻”이라며 “어쩌다 결원이 생기면 대기 순번대로 연락이 가지만 당장 들어올 수 있는 아이가 충원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인원이 많은 것은 대부분 ‘시간연장형’이기 때문이다. 민간 어린이집은 오후 5∼6시면 더 이상 아이를 봐주지 않는 곳이 많다.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오래 맡길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맞벌이 부부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한다. 하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김씨처럼 베이비시터를 함께 쓰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선호하는 데는 비용도 이유가 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 ‘사회통합 관점의 보육 교육 서비스 이용 형평성 제고 방안’에 따르면 정부지원금을 제외한 실 부담액의 경우 국공립 어린이집은 5만3806원인 반면 민간 어린이집은 7만6368원에 이른다. 보고서는 지난 7월 영·유아 부모 1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 중 22.1%는 7개월 이상 기다린 끝에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대기기간 없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간 경우는 45.3%였다.
그나마 이 보고서의 조사대상자 중 10%는 차상위계층 이하 저소득층이었다.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는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대상 1순위다. 저소득층을 제외하면 대기기간 없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경우는 더 줄어들게 된다.
문수정 박세환 기자 thursday@kmib.co.kr
[기획]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 ‘별따기’… 대기 4000명 넘는 곳도
입력 2014-12-30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