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인터뷰 주인공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많이 바빠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늘 심비(心碑)에 되새기는 각오는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나누고 섬기고 위로하고 베푸는 크리스천일수록 더욱 그렇다.
◇십자가 사랑, 섬김의 열매로=미자립교회 종탑 위의 네온사인 십자가를 10년째 고쳐주고 있는 남충희(60·천안성결교회) 가나다광고 대표(8월 25일자 32면). 남 장로는 29일 “기사가 나간 뒤 우리 교회에 어려운 이웃의 집을 수리해주는 ‘러브하우스 팀’이 생겼다”고 전했다. 남 장로가 팀장을 맡았고, 내년부터 본격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보도 직후 1년에 10여건이던 십자가 수리 요청 건수는 최근 4개월 간 40여건으로 급증했다.
남 장로는 “수십 년 만에 빨간 불이 들어온 네온사인 십자가를 보면서 울음을 터뜨린 교회 사모님도 보았고, 십자가 수리 외에 비가 새는 교회 방수 처리도 한 적이 있다”고 회고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전해왔다.
십자가 수집가 송병구(53) 목사(7월 7일자 29면)의 삶을 다룬 기사를 시작으로 매월 한 차례 연재된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리즈는 십자가 사진작가부터 십자가 목수, 십자가 모양의 악기 제작자 등 다양한 이들의 스토리를 발굴해 소개했다. 십자가 사진작가 권산(43·본명 권오일)씨(8월 4일자 25면)의 경우, 최근에 십자가 사진으로 선물용 달력 300개를 만들었다. 그는 “내년엔 이 아이템을 사업으로 발전시켜 수익금으로 불우 이웃들을 돕고 싶다”면서 “국민일보 보도 이후 십자가 사진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비전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릅나무 십자가’를 8000개 넘게 보급한 목수이자 목회자인 채현기(59) 목사(11월 3일자 29면)는 보도 이후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그는 “서해안청소년수련원 관계자가 보도 이후 300만원을 후원금 명목으로 보내왔다. 앞으로도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고 전했다. 십자가 목수 김명원(55)씨(9월 1일자 29면)는 “기사가 나간 뒤 경북 등지에서 작품 구입을 문의하는 연락이 왔었다”며 “앞으로 작품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카페 사랑, 희망 전도사로=정신·지적·지체 장애인 30여명을 고용해 카페 ‘히즈빈스’ 7곳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임정택(30) 향기내는사람들 대표(7월 7일자 30면)는 “내년엔 더 바빠질 것 같다”고 전했다. 내년 초 카페 8·9호점을 서울과 경기도 부천에 각각 문을 열 계획이기 때문이다. 2009년 1호점 개점 이래 6년 만에 수도권에 ‘입성’하는 셈이다. 임 대표는 “우리 입장에서는 매장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장애인 고용이 더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많은 장애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꿈을 심어주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애우 일터인 ‘조스테이블’ 설립자 정성자 권사의 ‘역경의 열매’도 반향이 컸다. “연재기사를 통해 장애아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다”는 장애인복지단체 관계자들과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고백이 줄을 이었다. 한 50대 독자는 “장애아인 우리 아이를 통해 나눔과 섬김의 의미,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연재 주인공인 정 권사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카카오톡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더욱 순종하며 성실하게, 순간순간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함을 다짐해 봅니다.”
◇낮은 자들을 향한 섬김 ‘현재 진행 중’=폐지를 주워 아프리카 아이들과 북한 주민을 돕고 있는 대전 호산나교회 이기복(88) 원로목사(7월 8일자 25면)는 요즘 일거리가 넘친다. 국민일보 보도를 접한 지역 주민들과 동료 은퇴목사들이 적극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하루 1만원 정도였던 폐지 판매 값이 지금은 2만원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최근에 폐지가 많이 나오는 빌딩 몇 곳을 확보했다”면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폐지를 주워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을 알고 폐지를 감춰뒀다가 준다”고 귀띔했다.
‘세월호 유가족 지킴이’ 이윤상(45·전주경동교회) 목사(8월 14일자 26면)는 보도 이후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지난 7월 한국기독교장로회 파송으로 상경한 이래 반년이 넘도록 헌신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 뒤에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유가족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은혜로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고 눈물로 소통하는 것을 봤다”면서 “내년에는 세월호 유가족 외에도 사회 곳곳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쌍용차·씨앤엠(C&M) 해고노동자와 용산참사 피해자 등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재찬 박지훈 전병선 기자 jeep@kmib.co.kr
[미션라이프 보도, 그 후] (중) 기독교 정신 실천한 크리스천들
입력 2014-12-30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