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신제윤, 독한 금융위원장이 되겠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경북 칠곡 대구은행 연수원에서 기술금융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기술금융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은 금융인으로서 역사적 사명이 없는 것”이라며 “자리에 있는 동안 기술·서민금융을 밀어붙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금융위 집무실에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을 마련, 시중은행의 기술금융 지원 실적을 게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등수 매기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서민금융’ 실적도 등급을 매겨 평가하고, 민원발생 평가 결과는 아예 각 영업점과 홈페이지에 공지하도록 했다.
신 위원장 집무실뿐 아니라 은행연합회 홈페이지 내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는 전체 기술신용대출 건수·금액과 함께 은행별 실적이 공개돼 있다. 한눈에 어떤 은행이 가장 많은 성과를 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은행들은 한목소리로 “순위 매기기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혹시 정부가 볼 때 정책방향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게시판 설치 이후 전체 기술금융 실적이 껑충 뛰었다.
은행 고위 관계자는 “기술금융 방향이 옳다는 데는 대다수 동의하지만 제대로 평가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5∼7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본다”며 “지금처럼 밀어붙이다 이후에 부실이라도 생기면 은행이 다 떠안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서민금융 지원 역시 우수·양호·저조 등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금융감독원은 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금융상품을 취급하는 16개 은행을 대상으로 ‘서민금융 지원활동 평가’를 한다. 지난 5월 금감원은 금융사의 민원 발생과 처리 등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그 결과를 영업점과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3개월간 표시하도록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정부 정책에 발맞춰 은행들을 압박하듯 순위를 매겨 관리·감독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각 은행의 성격이 달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우며, 시장을 정부 밑에 두고 운영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가 서민금융을 강조하며 내놓은 정책이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 못해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 2월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으면서 금융 당국은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2017년까지 40%로 늘리도록 했다.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타도록 적극 안내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변동금리가 더 유리한 상황이 됐다. 서민을 위해 내놓은 재형저축(근로자 재산형성저축), 소장펀드(소득공제 장기펀드) 등도 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규제 산업이다 보니 정부가 지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도 정부가 움직이는 대로 은행은 따를 수밖에 없다”며 “금융 당국이 정부안 가운데 무리한 부분은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그대로 실행하도록 밀어붙이기만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이슈분석] “서민·기술금융 실적 올려라” 몰아치는 官… 은행들 고역
입력 2014-12-30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