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악몽에 암울한 새해… “교회 잃게 생겼어요”

입력 2014-12-30 02:02
세광교회 신승섭 목사가 지난 23일 서울 대흥동 교회 사무실에서 ‘정비사업 설계 내용’을 들고 종교부지 이전 계획의 부당함을 설명했다. 허란 인턴기자
지난 24일 월산교회 배상도 목사가 교회 본당에서 재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교회를 향하는 오르막길에는 하얀 벽보가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벽보에는 ‘졸속적인 관리처분 인가 취소하라’는 내용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재개발을 목전에 둔 주민들의 애타는 바람이었다. 이 마을 중턱에 있는 세광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지난 23일 만난 신승섭 목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교회 존립의 문제예요. 무작정 재개발을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필요하면 해야죠. 그저 이 마을에서 목회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신 목사의 얼굴은 어두웠다. 교회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이었다. 세광교회는 재개발이 시작되면 교회를 이전해야 할 처지다. 세광교회가 위치한 곳은 서울 마포구 대흥동. 서울시는 2007년 세광교회가 있는 대흥동 12번지 일대의 6만1925.9㎡ 부지를 ‘대흥 제2주택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문제는 2012년 초 마포구가 재개발 사업시행을 인가하면서부터 생겼다. 사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대흥 제2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조합)’이 만들어졌고, 세광교회가 참여하지도 않은 사이 부지 감정평가도 마쳤다. 총 326.3㎡(약 99평)의 부지를 가진 세광교회의 평가액은 14억5300만원이었다.

“크게 걱정은 안 했어요. 조합과 처음 이야기할 때는 평가액과 관계없이 같은 크기의 종교부지로 이전(대토)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말이 바뀌더군요.”

신 목사는 조합이 만든 ‘정비사업 설계 내용’이라고 적힌 지도를 꺼내 설명했다. 그는 “조합이 종교부지를 정했는데 누가 봐도 이 마을 종교시설이 이전할 위치를 가정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며 “2012년 5월 이 같은 내용을 조합이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세광교회에서 북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획지5. 눈대중으로 봐도 현재 세광교회의 면적과 같은 크기의 부지였다.

그러나 조합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조합은 ‘관리처분 계획(재개발 등의 정비사업 지역에 조성된 대지와 기존 건축물의 처분 및 관리에 관한 계획)’ 인가신청을 지난달 구청에 하면서 세광교회가 획지5로 옮기려면 12억2800여만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월산교회(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난 24일 만난 월산교회 배상도 목사는 이전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도 조합이 다른 말을 한다며 분개했다. 약 990㎡(300평) 규모의 부지를 가진 월산교회는 지난달 6일 조합과 ‘월산교회 부지를 획지3과 대토 개념으로 교환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조합은 이날 밤 월산교회에 “당일 귀 교회에서 작성한 합의서 내용이 지금까지 당 조합과 귀 교회 간 진행된 협의 내용과 전혀 상반된 내용”이라며 합의를 무효화한다는 문서를 보냈다. 닷새 후인 11일에는 아예 교회 이전 부지를 일방적으로 변경해 통보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조합과 교회와 구가 3자대면도 했어요. 거기서 합의까지 해놓고 왜 조합 마음대로 하느냐고 따졌죠. 그런데도 무시하더군요.”(배 목사)

마포구는 두 교회보다 조합에 힘을 더 실었다. 구는 지난 9일 교회와 조합이 합의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리처분을 인가했다. 이에 신 목사와 배 목사를 비롯한 두 교회 성도들이 이틀간 밤샘 시위를 펼치자 구보 고시를 연기했다. 구는 29일까지 조합과 교회가 협의를 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서울시가 2009년 만든 ‘뉴타운지구 등 종교시설 처리방안’은 무용지물이었다. 이 방안은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할 때 ’종교시설은 우선적으로 존치가 되도록 검토’ ‘이전이 불가피한 경우 존치에 준하는 이전계획 수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구 관계자는 “시의 지침이지만 꼭 따라야 할 부분은 아니다”며 “어디까지 적용할지 시에 질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희망찬 새해를 앞두고 있지만 두 목사는 인터뷰 내내 웃지 못했다. 오히려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내년에 분위기가 더 안 좋을 거예요. 결국 구보 고시가 될 거고, 불도저가 집들을 밀고 다니면 지금보다 더 버티기 힘들겠죠.”(신 목사)

“법에 없다고 인권이나 생존권을 고려하지 않는 저들의 행태가 답답할 뿐입니다. 이건 사회 정의도 하나님의 진리도 아닙니다.”(배 목사)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