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수영 (11) 환경 열악에도 중국서 심장수술 성공률 ‘최고’

입력 2014-12-31 03:35
네이멍구 바오터우에서 80대 노인의 심장을 수술한 정수영 박사(왼쪽)가 기력을 되찾은 환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칼라 심장센터는 점점 다른 나라와 도시로 시야를 넓혀 나갔다. 나와 카마이클은 중국으로 갔고, 어떤 이는 인도와 케냐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심장수술 사역을 했다.

난징 사역은 우리에겐 도전이자 축복이었다. 우리는 중국 의료선교에서 두 가지 방향에 주력했다. 첫째, 매년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해 수술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 의사들을 오칼라에 초청해 훈련하는 것이다. 외과의사 첸 형제와 마취과의사 바오 자매는 오칼라에 와서 훈련받은 첫 번째 수련생이었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낮에는 병원에서 수련하고 저녁에는 성경공부를 했다.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성경을 본 적도 없던 그들이 얼마 후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6개월 후 그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땐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교회도 없고 성경을 가르칠 교사도 없으며 신앙을 나눌 공동체도 없는 그곳으로 돌아가면 이제 갓난아기 같은 두 신앙인이 어떻게 세상의 거센 폭풍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돼 마음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듬해 난징에서 그들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이 귀한 생명의 아들과 딸을 강건하게 지키시고 돌보셨기 때문이다.

병원 측에서는 이들에게 집요하게 공산당원이 되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공산당 입당 원서에는 모든 종교를 부정하고 종교인이 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산당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믿음을 지킨 채 이듬해 난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년 뒤 병원 측은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공산당 입당을 강권하지도 않았다.

외과의사인 첸 형제는 남다른 재능을 가진 훌륭한 의사로 성장했다. 짧은 기간 내에 난징 오칼라 심장센터를 중국 5대 심장센터 중 하나로 만들었다. 지금은 1년에 1200건의 심장수술을 하는 병원이 됐다. 그는 또 공산당원이 아니면서도 매년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난징시를 대표하는 8명의 대의원 중 한 명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후진타오 당시 주석과 원탁테이블에 앉아 토론하는 사진을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난징 사역을 한 후 수많은 중국인 의사와 간호사가 미국 오칼라를 다녀갔다. 난징에 왕래한 지 6년째 됐을 때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한 수술의 통계를 내보았다. 중국에는 미국보다 중증환자가 더 많았다. 지금까지 300명의 환자를 수술했는데 합병증이 생긴 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사망자 수는 단 2명이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모든 것을 갖춘 미국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온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난징에 가기 시작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 우리가 한 일이 입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서 우리를 초청했다. 푸젠성과 옌볜, 네이멍구 바오터우 등에서 초청했다.

우리가 난징에서 심장병원을 설립하고 사역하고 있을 때 옌볜의과대학병원에서 초청이 왔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동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파란만장한 민족의 역사 속에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던 그들의 삶도 알게 되었고, 가까운 북한의 실정도 귀동냥으로 듣게 되었다.

옌볜에서 심장수술을 시작하게 되면서 의사 세 명을 미국 오칼라로 초청했다. 우리가 현지에서 여러 번 보여주는 것보다 오칼라에 초청해 직접 경험하고 훈련하는 것이 더 도움됐기 때문이다. 셋은 모두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돌아가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났다. 옌볜의과대학 사역은 병원장이 바뀌면서 중단되기도 했지만 수년 전 다시 임용된 병원장이 우리를 찾아와 간곡히 부탁해서 다시 재개됐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