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고황 국방부

입력 2014-12-30 02:10

이쯤 되면 고황(膏 )이어도 지독한 고황이다. 고(膏)는 가슴 밑의 작은 비계, 황( )은 가슴 밑의 얇은 막(膜)이다. 이곳에 병이 나면 낫기 어렵다. 그래서 고질(痼疾) 또는 오래돼 바로잡기 어려운 나쁜 버릇을 뜻한다.

대한민국 국방부를 말하는 것이다. 전체를 뭉뚱그려 지적하면 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안보팀 수뇌부로 특정하는 게 더 맞겠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29일 국회 국방위 업무보고에서 한·미·일 3국의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공유 약정’과 관련해 “지난 26일 서명했고, 발효일은 29일로 했다”고 보고했다. 이미 서명해 놓고 3일 뒤에 국회에 보고한 것이다. 참 어이가 없다. 국방부는 26일 언론 브리핑에서 “29일 약정문에 서명할 것이며 서명 직후 발효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2년 전 한·일 군사정보 협정을 비밀리에 추진하다 역풍을 맞고 서명 직전 철회한 전비(前非)가 있다.

반일 감정 등에 따른 일부 반대 여론이 있지만 이 약정은 한반도 상황이나 외교·안보 전략상 일정 부분 필요성이 있다. 문제는 이를 추진하는 청와대 안보실이나 국방부 수뇌부의 태도다. 정책을 추진함에 늘 당당하지 못하다. 실제로 정책이 좀 잘못됐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그런 것인지, 반대 여론을 설득할 능력이 없어서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요 정도 거짓말쯤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청와대 안보실이나 국방부 내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수뇌부의 획일적인 집단사고(groupthink) 경향이 농후한 것 같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응집력 높은 소규모 의사결정 집단에서 대안 분석이나 다른 의견을 억제해 쉽게 합의, 그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현상’을 집단사고로 규정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지도자, 군, 정보기관 수뇌부가 모여 결정한 어처구니없는 쿠바 침공(1961년)이 대표적 사례다. 대부분 하버드대나 예일대 출신이었다. 동질성이 문제였다. 육사 출신들이 보직을 이어가며 수십 년간 배타적이고 응집력 높게 형성한 조직에 어찌 고황이 들지 않겠는가. 그나마 강력한 외부 시각이 들어가 견제해야 조금이라도 고쳐질텐데.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