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듯 한파가 시작됐다. 한껏 움츠러든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도심은 그야말로 매서운 겨울앓이 중이다. 하지만 도시의 겨울과 달리 쉽사리 얼지 않는 바다의 겨울은 또 다른 모습이다. 잠들 줄 모르는 파도에도 어선의 항해는 거칠 것이 없고 새벽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어선이 모이는 어항의 시끌벅적함이 어촌의 새벽을 깨운다.
흔히 세계 3대 미항으로 나폴리, 시드니, 리우데자네이루가 꼽힌다. 그런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세계 4대 미항, 5대 미항에 도전하고픈 생각이 절로 드는 경관을 마주할 때가 많다. 그런데 최근 변화한 어촌과 어항의 모습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단순한 욕심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변화들이 세계적인 항구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어촌과 수산업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어장 환경의 변화와 시장 개방으로 수산업은 새로운 여건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어촌경제 침체로 인한 고령화, 공동화가 심화되고 있으므로, 어촌·어항을 한 단계 도약시켜 어촌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이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수상한 헤밍웨이의 두 손자들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 근교에 위치한 코히마르 어촌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작은 어촌을 방문한 것이 기사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코히마르 어촌에서 헤밍웨이가 영감을 얻어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헤밍웨이 효과로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코히마르 어촌처럼 우리의 어촌과 어항도 이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어업인과 도시민이 함께 즐기는 지역경제의 중심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어촌·어항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어항이 단순히 수산물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공간으로 재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6개 국가어항 등에서 38개 수산 관련 축제가 열렸고 이 축제들에 참여하기 위해 300만명이 어항을 찾았다. 그로 인한 경제 효과는 761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항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커피해변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강릉의 커피거리를 보자. 커피거리는 강릉항이 쾌적한 어촌·어항 복합공간으로 리모델링되면서 조성될 수 있었고 강릉항 주변에서 시작된 커피거리는 정동진과 경포대로 확대돼 지금은 강릉지역 전체가 ‘커피특구’가 되었다. 그 결과 강릉은 한철 휴가지가 아닌 사계절 관광지로 변모해 강릉지역 경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촌마을의 변화도 화려하다. 삼척 장호어촌체험마을에서는 바닥이 보이는 오목한 공간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투명 카누와 스노클링까지 즐길 수 있어 가족과 연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다양한 어촌체험마을의 활성화는 해외 관광이 늘고 있는 시점에서 국내 관광객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어촌·어항발전 기본계획 수립과 함께 어항을 문화 공간으로 적극 개발하기 위해 아름다운 3대 어항과 다기능 어항 선정 등을 통해 어항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발굴, 가꾸어나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의 어촌과 어항은 수산물 생산기지였던 공간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이야기가 있는, 편안하고 즐거운 국민적 공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각 어항이 갖고 있는 특성을 충분히 살리고 정부와 어촌의 노력이 합쳐진다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인에게도 사랑받는 명소가 되리라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 세계 4대 미항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대한민국의 어촌·어항으로 세계인이 방문할 날을 기다려본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어촌양식정책관
[시론-박준영] 어촌·어항, 미래를 깨우다
입력 2014-12-30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