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초 걸리던 119 출동지령, 1초에 끝낸다

입력 2014-12-29 03:22
원종만 소방관이 28일 서울 종로소방서 세종로119안전센터 앞에서 소방관 전용 애플리케이션 ‘골든타임119’를 소개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동희 기자

119에 화재신고를 하면 관할 소방서에 출동지령이 내려간다. 지령은 소방서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 방송되고, 출동지령 문서로 출력되며, 소방차에 장착된 장비로도 통보된다. 소방관들이 이 지령 방송을 듣고 상황을 파악해 출동하기까지 평균 30초가 걸린다. 화재 진압 ‘골든타임’(5분)을 놓치지 않으려면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30초는 아주 긴 시간이다.

이를 단축하기 위해 현직 소방관이 현장출동을 위한 소방관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골든타임119’를 개발했다. 앱 개발자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해 시제품까지 만들었다. 국민안전처 등과 소방 시스템에 정식 도입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다. 그가 이런 앱을 만든 건 세월호 참사에서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소방서 세종로119안전센터 원종만(31) 소방관이 만든 앱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출동지령이 담긴 팝업 알림창이 스마트폰에 뜬다. 화재·구조 출동 알림은 빨강, 구급 출동은 녹색이다. 출동 진행 상황, 신고자 전화번호 등의 정보는 물론 자신이 속한 소방차가 출동 대상인지도 바로 파악된다.

출동 중에는 현장 정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현장 주변 소화시설(소화전·급수탑 등) 위치, 선착대의 현장 카메라 영상, 풍향·풍속·온도 등 주요 기후 정보와 환자 이송이 가능한 병원도 표기된다. 원 소방관은 28일 “이 앱을 이용하면 지령 방송을 30초씩 듣지 않아도 출동 대상 소방차와 소방관을 1초 만에 확인할 수 있다. 출동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도 ‘서울119’ ‘안전디딤돌’ 등 소방 관련 앱이 있었지만 소방관에게 필요한 출동지령 및 현장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소화전 위치 정보 등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그가 골든타임 앱 개발에 나선 건 지난 4월 세월호 참사의 충격 때문이었다. 원 소방관은 “출동지령 방송을 듣는 시간을 10∼20초 단축하면 귀중한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앱 개발에 필요한 전문기술은 하나도 없었다. 야간 근무가 끝난 뒤 잠자는 시간을 줄여 앱 개발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소방본부 등에 건의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디어를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 7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앱 아이디어 공모전에 기획안도 냈다. 그의 고민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 소정의 지원금도 받았다. 시연용 앱과 홍보영상은 이 돈에 사비를 더해 제작했다.

2008년 소방공무원이 된 그는 2011년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며 현지 선진 소방 시스템을 체험했다. 원 소방관은 “현지 소방서를 무작정 찾아가 한국에서 온 소방관이라 소개하고 함께 출동하기도 했다”며 “그들도 지령 방송을 끝까지 듣고 나가더라. 이 앱이 성공한다면 외국에 전파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골든타임119’가 현장에 적용되려면 아직 보안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의 동료들은 “빨리 완성하라”고 벌써 재촉하는 중이라고 한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