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감염자 과음 ‘불난 데 기름 붓는 꼴’

입력 2014-12-30 02:08
에이치플러스(H+)양지병원 소화기병센터 정진용 과장이 최근 잦은 송년회식의 영향인지 배에 가스가 차고 소화도 잘 안 된다고 호소하는 중년 직장인에게 간질환과 알코올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H+양지병원 제공
간의 형태 이상을 살펴보는 복부초음파검사 광경. H+양지병원 제공
직장인 주영자(가명·47·여)씨는 지난 주 화요일 저녁 동료와 함께 연말 부서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 평소에도 회사 일에 의욕적으로 참여하던 터라 주씨는 그날도 잇따른 건배 제의를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결국 과음을 하고 만 주씨는 귀가 중 빙판 길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며 손목 뼈 골절상을 입었다. 주씨는 바로 병원을 방문, 응급처치를 받았다. 물론 치료 전 기본검사로 혈액검사도 받았다. 이후 주씨는 부러진 손목 뼈 부위를 고정하는 깁스를 한 상태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주씨는 이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도 새로 알게 됐다. 혈액검사결과 활동성 C형간염 환자로 판정됐기 때문이다. 지금 주씨는 이 역시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송년회 시즌을 맞아 연일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간 기능 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매일 오전 약국마다 각종 숙취 및 해독에 좋다는 드링크제와 간장약을 찾는 직장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렇게 술을 무절제하게 마시다간 간 건강에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간, 이상 느낄 땐 이미 심각 단계=실제 만성 간 질환의 주범은 간염 바이러스와 술이다. 이중 특히 애주가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알코올성 지방간 및 간염과 B·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간 질환이다.

바이러스성 간염은 간경변증과 간암의 원인 중 60% 이상, 알코올성 간염 및 지방간은 약 10%를 차지한다. B형 또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줄 모르고 과음하기를 밥 먹듯이 하게 되면 말 그대로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꼴’과 같이 되기 쉽다.

건강한 간을 가지려면 일단 술부터 멀리 하는 게 좋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술을 끊으면 곧 정상화된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술 마시기를 계속하다가 간경변증을 합병하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이땐 병의 진행을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간경변증의 절반 이상은 간암으로 발전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간 질환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발병 여부를 알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에이치플러스(H+)양지병원 소화기병센터 정진용 과장은 “간염 환자의 대부분이 혈액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받고 우연히 발병 사실을 알게 된다”며 “건강검진을 통해 발견하거나, 주씨와 같이 골절 등의 이유로 수술 전 마취를 위한 기본검사를 받던 중 간 질환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 불릴 정도로 70∼80%가 파괴될 때까지 특별히 이상한 증상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간을 건강하게 오래 지키는 방법=가장 중요한 것은 술을 끊거나 절제하고,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는 생활습관이다.

간 질환자가 술을 끊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간경변증 발생 위험이 낮아지며, 간경변증에 의한 합병증 발생 위험도 줄어든다. 간암 발생 위험 역시 감소한다.

약물 복용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식품과 약은 일차적으로 간에서 진행되는 해독과정을 거쳐 소화된다. 따라서 별 생각 없이 복용하는 간단한 진통제도 장기 복용을 하거나 그 양이 많을 경우 해독을 책임진 간이 견뎌내지 못하고 ‘약제성 간염’을 일으킬 수 있다.

지방이 많은 음식을 과식하는 행위도 삼가야 한다. 장기적으로 지방간을 초래, 간 기능을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가급적 간에 부담을 덜 주는 신선한 채소나 비타민과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침묵의 장기란 말이 있듯이 간 질환의 경우 이상 증상이 나타난 다음엔 이미 치료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정기건강검진 시 피검사와 더불어 방사선 노출 위험이 없는 복부초음파 검사를 추가해 간 상태를 살펴보는 것도 간 건강을 지키는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