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 ‘정윤회 문건’ 등 박지만에 수시로 비선 보고

입력 2014-12-29 02:40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촉발시킨 ‘정윤회 문건’이 비선라인을 통해 박지만(56) EG 회장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48·구속) 경정과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를 상부에 정식 보고하는 한편 아무 권한이 없는 박 회장에게 별도로 보고했다는 뜻이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 등이 청와대 재직 시절 각종 내부 보고서와 기밀 정보를 박 회장 측에 전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중반부터 올 1월 사이에 이런 ‘비선 보고’가 집중됐던 것으로 파악했다.

◇박 회장에게 ‘정윤회 문건’ 등 보고서 수시 전달=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올 1월 박 경정을 시켜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를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복수의 관련자로부터 확보했다. 박 경정이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갖고 나가 박 회장 측근 전모씨를 통해 박 회장에게 건넸다는 게 검찰이 보는 기본 구도다. EG와 육영재단의 법무팀장을 지낸 전씨는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영입하려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의 반대에 부닥쳤던 인물이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이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지난 1월 6일 작성된 지 얼마 안 돼 박 회장 측에 전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 경정이 지난 2월 문건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겨놓기 이전에 이미 박 회장 쪽으로 보고서가 새어나갔다는 의미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공모해 지난해 중반부터 올 1월까지 내부 보고서나 문건 내용을 수차례 박 회장에게 보고했다고 본다. 이는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을 발탁해 업무를 맡긴 시기(2013년 4월∼2014년 2월)와 대체로 일치한다.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핵심 2인이 오히려 업무 중 취득한 정보를 대통령의 남동생에게 비선으로 보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조 전 비서관의 반대에도 박 경정을 파견 8개월 만에 경찰로 복귀시킨 건 이런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일 수 있다.

검찰은 27일 조 전 비서관에 대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30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거쳐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두 가지 유출 경로=당초 검찰 수사로 밝혀진 청와대 문건 유출 경로는 한 갈래였다. 박 경정이 지난 2월 경찰로 복귀하게 되자 다량의 문건을 반출해 정보1분실장실에 갖다 놨고, 한모(44) 최모(45·사망) 경위가 이를 몰래 복사해 언론사 등에 2차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응천·박관천→전모씨→박지만’이란 유출 루트가 추가로 드러났다. 박 경정은 박 회장을 직접 접촉하기보다 ‘가교’ 역할인 측근 전씨의 사무실 등을 방문해 문건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지난 23일 검찰에 2차 소환돼 관련 내용 일부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1차 조사 직후인 17일만 해도 “조 전 비서관이나 박 경정에게 청와대 문건이나 동향에 관해 설명을 들은 바 없다. 오히려 관리를 받는 입장이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었다.

◇조응천, ‘3인방’ 견제 위해 무리수 뒀나=조 전 비서관은 27일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받고 귀가하면서 “가족과 부하직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설사 박 회장에게 내부 정보를 전했다 해도 정당한 업무의 일환이었다는 항변이다. 조 전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청와대 ‘워치 도그’(watch dog·감시견)였다. 위험을 보면 짖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 때부터 청와대에 합류한 조 전 비서관은 ‘1호 국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힘이 막강했다. 공직기강비서관 본연의 업무뿐 아니라 민정수석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만큼 직무영역이 넓었다고 한다. 그러다 청와대 직원 감찰이나 인사 검증 등을 놓고 핵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과 종종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인방 뒤엔 정윤회(58)씨가 버티고 있다는 게 조 전 비서관의 인식이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을 무기로 써서 이들을 흔드는 동시에 자기 세력의 입지를 다지려 했던 것으로 의심한다. 이를 위해 친분이 있던 박 회장을 계속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수 있다. 박 경정도 인터뷰에서 “조 전 비서관은 ‘정씨의 국정개입을 막기 위해 박 회장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나 박 회장은 주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었다.

지호일 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