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중심에 있던 미국 경제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고성장·저실업·저물가의 이상적인 경제 호황을 의미하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경제가 지독한 침체기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골디락스의 힘’, 어디서 나오나=미국은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GDP) 5.0%를 기록했다. 5%대 성장은 2003년 3분기(6.9%)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올 4분기 성장률이 3% 초반 정도만 유지하더라도 미국은 올해 2% 후반 성장이 가능하다. 골드만삭스, JP모건, 씨티은행, 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예측했던 2.2∼2.3% 성장을 웃도는 수치다. 조지프 라보그나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4분기에도 미국 경제는 5%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아직 유가 급락에 따른 혜택이 경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일본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고, 고성장을 이어가던 중국도 주춤하고 있다. 러시아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와중에도 미국이 ‘나홀로’ 성장세를 유지하는 원인을 안정된 고용시장에서 찾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신규 일자리가 한 달에 20만개 이상 창출될 경우 고용시장이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이 기준을 넘어섰다. 실업률도 6년4개월 만에 최저치인 5.8%로 낮아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제조업 육성정책이 고용 안정을 가져왔다. 차세대 유망 업종에 대한 투자액의 30%를 세액공제해주고 제조업 연구·개발(R&D) 세제 지원에 5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미국 정부는 또 중소기업 고용장려금으로 250억 달러를 책정했고,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이 유턴할 경우 세금을 깎아주는 등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쏟아냈다.
고용이 안정되자 자연스럽게 가계 소비가 늘어났다. 올해 2분기 미국의 가계 소비는 1분기 대비 2.5% 늘며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고, 3분기에는 3.2%까지 증가하며 지난해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소비 확대로 인해 기업의 수입도 증가하게 됐고 이는 투자로 연결됐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며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조금씩 여력이 생겨 투자를 늘릴 수 있게 됐다. ‘고용 안정→가계 소비 확대→기업 수입 증가→투자 확대→신규 고용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미국 ‘나홀로’ 성장, 언제까지 이어질까=전문가들은 미국이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제 회복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유가 하락의 약발이 내년에 본격화되면서 성장률을 더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중순 미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8달러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대폭 낮아져 1달러대까지 등장했다. 4분기 유가 하락 폭은 더 커졌고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 하락이 미국 GDP 성장률을 추가로 0.2∼0.5% 포인트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도 미국 경제가 2005년 이후 처음으로 3%대 성장까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미국의 경제성장이 단순히 유가 하락 덕만 본 게 아니라 구조개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라는 점도 일시적인 성장이 아니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부채는 금융위기 이후 3.5% 줄었고, 은행들도 자본 확충에 성공해 대출 여력이 늘었다. 비(非)금융 부문의 경우 GDP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반 66%를 넘었지만 최근 58%대로 떨어졌다.
도미닉 로시 피델리티 월드와이드 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경제가 회복되면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는데도 인건비 비중이 낮아진다는 것은 경기 회복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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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홀로 호황] 고용 안정의 힘… ‘제 2의 골디락스 경제’ 진입
입력 2014-12-29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