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한 남편의 부탁에 따라 남편의 전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50여년을 살아온 80대 할머니가 재판을 통해 본래 이름을 되찾게 됐다.
최달순(가명·86·여)씨는 1958년 남편과 사별하고 임모씨와 재혼했다. 임씨도 아내 박순자(가명·여)씨와 사별해 자녀 세 명과 살고 있었다. 임씨는 새 가정을 꾸린 최씨에게 ‘사별한 아내(박순자) 이름으로 살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새엄마와 산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가족관계등록부 등 서류에 최씨가 계모라는 게 나타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씨는 부탁을 받아들여 아직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박씨 이름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자신의 본래 이름은 1960년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여성 A씨가 국내 호적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게 줬다.
최씨는 최근 자신의 본명 주민등록이 ‘사망직권말소’된 사실을 알게 됐다. A씨가 2006년 사망하면서 주민등록이 사라진 것이다. 최씨는 원래 이름을 되찾기 위해 거주지인 서울시 등촌3동 동사무소에 찾아가 주민등록 재등록을 요청했다. 하지만 동사무소 측은 “사망 말소자는 재등록이 안 된다”고 거부했다. A씨는 1975년 최씨 이름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면서 자신의 지문을 등록한 상태였다. 최씨는 이에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냈다.
법원은 최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는 가족관계등록부상 박씨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이라며 “임씨 자녀의 증언 등에 의해 원고가 최씨 본인임이 확인된 이상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동사무소 측은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최규홍)는 원심처럼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남편 전처 이름으로 살던 80대 할머니, 56년 만에 본명 되찾았다
입력 2014-12-29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