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행 13:47)
1979년 중국이 서방을 향해 문호를 개방하면서 중국 선교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뉴욕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선교병원 건립 등을 위해 기도했지만 만리장성은 하루아침에 열리지 않았다.
빗장은 12년 만에 풀렸다. 91년 카마이클이 먼저 난징에 들어갔고 이듬해 내가 가게 되면서 우리는 교대로 1년에 두 번씩 심장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난징의 의료 환경은 그야말로 열악했다.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놓고 수술해야 했는데 파리가 들락거릴 정도였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수술이 제대로 될까 걱정도 됐지만 첫 환자 수술을 무사히 마치자 자심감이 생겼다. 두 번째 환자는 50대 중반으로 관상동맥 수술을 했는데 결과가 아주 좋았다. 저녁 식사 후 10시쯤 병원에 들렀더니 인공호흡기도 떼고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 말을 잘하고 팔다리를 움직이며 미음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밤 12시쯤 잠이 들려는데 전화가 왔다. 환자가 위험하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단돼 8층 중환자실까지 뛰어 올라갔다. 환자의 심장은 정상이었으나 중증중풍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오른쪽 팔다리에 미동이 있을 뿐 전신이 마비됐다. 불과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환자가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시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전장에 나갔다 돌아온 패잔병이 따로 없었다.
“하나님 이름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합니까. 제자 환자를 위해 기도할 때 중환자실 주임의사가 비웃는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수술을 한 그 환자는 3일째 누워 있었다. 그때 우리와 같이 간 간호사 조이스가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오칼라에서 당신이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할 때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체험했어요. 이 환자에게도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나는 속으로 ‘3일을 하나님과 씨름했는데 지금 기도한다고 무슨 소용일까?’ 머뭇거리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간호사에게 미안해서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하고 환자의 가족들을 불렀다. 용기를 내어 환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 순간 여기서 더 이상 하나님을 창피하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짧게 기도했다.
“이 환자가 만약 살게 된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길을 인도해 주시고 무엇보다 가족들을 잘 돌보아 주소서.”
기도는 이렇게 아주 싱겁게 끝났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 비록 이 환자는 이렇게 되었지만 남은 일정 동안 나머지 환자들을 무사히 수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튿날 수술을 위해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 두 분이 병원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으며 우리 손을 끌고 중환자실로 급히 올라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 환자 앞에 섰는데 놀랍게도 환자가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더니 멀쩡히 신문을 보고 있고 사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밤 사이 중환자실은 초상집에서 잔칫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참 말을 잃고 섰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아,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이 하셨구나!’하는 깨달음이 내 멍한 의식을 깨웠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 55:8)
지난 사흘은 마치 지옥에 다녀온 것처럼 끔찍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겨자씨만도 못한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교만을 떨었단 말인가! 나는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수영 (10) 믿음의 심장수술로 중국 선교의 문을 두드리다
입력 2014-12-30 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