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해의 끝자락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2014년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아름다운 모습은 거의 없다.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웬 사건·사고들이 그리도 잦았는지, 조용한 날이 거의 없었다. 요즘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을 명령받은 통합진보당은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에 편승해 진보세력 일각에선 통진당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맞장구를 친다. 반면 일부 극단적인 보수 인사들은 이참에 종북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면서 무차별적인 고발전(戰)에 나서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념 대결이 세밑 대한민국을 달구는 중이다.
지난달 터진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의 여진도 현재진행형이다. ‘문고리 권력’ ‘비선 실세’ ‘국정 농단’ 등의 용어들이 난무하면서 국민들의 자괴감은 커진 상태다. 내년 초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더라도 후유증은 지속될 전망이다. 공분을 불러일으킨 ‘땅콩 회항’ 사건 여파 역시 지속되고 있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해킹 사건과 한·미·일 군사정보 약정 체결 방침을 둘러싼 논란도 연말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눈을 좀 더 과거로 돌리면 세월호 참사와 총리 후보자 2명의 잇단 낙마가 보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한 사건들이다. 아울러 가혹행위 사망 사건과 총기 난사, 방산비리, 성 추문 등이 잇따르면서 군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수능의 2년 연속 출제 오류로 교육 당국의 공신력도 추락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이상향이라지만 올해 우리나라는 정반대였다. 오랫동안 쌓여온 폐해들이 쉴 틈 없이 순차적으로 폭발했다. 나라는 어수선하고, 국민들은 불안했다.
공직사회도, 여야도, 기업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무거운 책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2년 전 이맘때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당선인에게 적지 않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전임 대통령들보다 나라를 더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 또는 더 잘 이끌어 달라는 응원의 박수였다. 하지만 작금의 민심은 한겨울 날씨만큼이나 싸늘하다.
압축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에게 많은 걸 바랐었나보다. 이 정도로 못할 줄 몰랐다.” 핵심은 각종 대형 사건·사고 때 드러난 독선과 불통의 리더십이다. 박 대통령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얘기일 것이다. 허나 올 송년 모임에서도 “박 대통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국민들을 안심시키지도, 보듬지도 못했다. 언제 또 믿음을 저버릴지…”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정치·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과 대응 방식이 영 못마땅하다는 불만이 배어 있다.
먹고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점도 여론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경기침체 장기화 등으로 서민들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맨 상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대부분 허점투성이다. 동분서주하는 듯한 경제팀을 빗대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경제도 0점’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 남은 박근혜정부 임기 3년은 지난 2년보다 괜찮아질까.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길을 간다’는 박 대통령 스타일을 스스로 바꾸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됐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잔뜩 움츠려 있던 공직사회 움직임마저 수상하다. 사학·군인연금 개혁안을 하루 만에 번복하고, 담뱃값과 주민세 인상안을 연달아 발표하는 등 박근혜정부를 코너로 몰아붙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자신들을 옥죄는 박근혜정부에 대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기대치를 낮추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그나마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길이지 싶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이 정도로 못할 줄이야”
입력 2014-12-29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