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전도는 사명입니다

입력 2014-12-29 02:0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6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구절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유명한 최봉석(1869∼1944) 목사님이 어느 날 평양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부인이 “나도 예수를 믿고 있다”고 말하자 최 목사님이 그 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으면 왜 나를 전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도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즉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전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이 사마리아 여인을 부정한 여자로 취급했습니다.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 여인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가 부정한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이 전하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주민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요 4:39∼42) 복음의 능력은 나의 형편이나 나의 모습, 나의 삶으로 인해 결코 축소되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도는 믿는 자들의 멈출 수 없는 사명입니다.

둘째, 크리스천들은 죽을지언정 전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행 7:54∼60).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기도로 인하여 ‘사울’을 구원하셔서 ‘바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셋째, 전도는 실제로 전도할 때 전도가 되고 전도하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병원 접수대에 근무하는 여직원에게 예수를 믿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자매님은 어떤 관계세요?”라고 물었더니 여직원은 망설였습니다. “지금 만일 이 세상과 이별한다면 천국엔 가실 수 있으세요?”라고 재차 묻자 희미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신 없어요.”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이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은 그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순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때까지 이 귀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성도, 즉 구원받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임무입니다.

우재호 의성 덕봉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