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남은 올해, 2015년 수첩을 마련한다. 전자 수첩이 아닌 아날로그 수첩이다. 365일이 다 보이고 52주가 차르르 펼쳐진다. 2014년 수첩을 차르르 넘겨본다. 했던 일, 만났던 사람, 사회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사건들이 말 그대로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수많은 계획들, 못했던 일, 포기한 일, 가슴 아팠던 일, 상실감 깊었던 사건, 분노로 떨었던 날들이 다 들어있다. 즐거웠던 순간, 기뻤던 순간들은 때때로 있었으나 올해만큼 상실감이 깊었던 해도 없었던 것 같다.
절망 속에서 희망은 피어오른다는 말을 떠올린다. 아직 그토록 절망에 이르진 않은 것일까? 아직도 더 깊이 빠져야 할 나락이 있는 것일까? 희망을 떠올리기에 아직 힘이 부친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칠 수 있는 것일까? 단서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할까? 여전히 마음속은 분주하다. 내일을 모르기에 마음속 깊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살아 있음의 신호다.
2015년으로 넘어가야 할 과제들을 옮겨 적고, 계속될 일상의 행사들을 적어놓는다. 온갖 계획도 적어놓는다. 아무리 못해낸다 하더라도 계획을 한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나름대로 시간표도 만들어 둔다. 아무리 마감을 못 지키더라도 내 시간은 내 시간이니까. 버킷 리스트 같은 ‘소망 반, 계획 반’ 리스트도 적어둔다. 어떤 운명이든 어떤 우연이든 이 리스트 중 한두 개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려 든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없이 터졌던 안전사고들, 사슴을 말이라 우긴다는 ‘지록위마’ 행위가 판치던 사건들, 절망감에서 비롯되었던 수많은 좌절의 몸짓들, 사람 가슴을 후비고 생채기를 내었던 몰상식한 행동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나뿐이겠는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올해에 마음을 더 깊이 다치게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위로만으로 될 건 아니지만 위로가 필요하다. 희망만으로 구원받을 건 아니지만 희망이 필요하다. 의지만으로 풀릴 건 아니지만 의지를 떠올려야 한다. 2015년을 함께 헤쳐가겠다는 위로, 2015년을 같이 살아내겠다는 희망, 2015년을 살려내겠다는 의지를 수첩에 적는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2015년 수첩을 차르르 넘겨본다
입력 2014-12-29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