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장관들 신년휴가 가지마!

입력 2014-12-27 02:13
눈보라가 몰아치는 모스크바 거리에서 25일(현지시간) 힘겹게 걷고 있는 여성의 머리 위로 달러당 53루블이라는 환율을 표시한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 한때 달러당 80루블까지 떨어졌던 루블화 가치는 최근 러시아 정부가 수출 대기업에 달러 매각을 지시하면서 다시 급반등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환율 하락도 단기간에 끝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PA연합뉴스

루블화 폭락과 물가 급등, 외환보유액 급감 등 전방위 경제 위기에 봉착한 러시아가 위기 탈출을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섰다. 밀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됐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휴가까지 통제하고 나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내년 2월 1일부터 수출용 밀에 대해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관세 부과가 국내 곡물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밀 수출량이 급증하자 국내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밀값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밀 수확철이 시작된 지난 7월 이후 수출량은 30% 급증했다. 이런 사이 최근 5개월 동안 러시아 밀값은 80% 급등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내년 6월 말까지 1100만t의 밀을 더 수출할 예정으로 국제 밀값도 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물가 상승도 러시아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물가는 자칫 정권에 대한 불만 표출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빵이나 우유, 달걀 등 주요 생필품에 대한 가격 동결 조치를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통상부 장관은 생필품 생산업체들에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하면서 “경고를 듣지 않으면 정부는 합당한 입법적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타스 통신은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현행 규정에 따라 주요 생필품 가격이 한 달 새 30% 이상 급등하면 물가 동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러시아 정부는 내년에도 물가가 10% 정도 인상될 것으로 내다보지만 그것은 지극히 낙관적인 전망”이라며 “적어도 15∼20% 급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보유액이 급감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화보유액이 지난 13일부터 1주일 새 157억 달러가 줄어 지난 19일 현재 3989억 달러(439조원)가 남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09년 8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푸틴 대통령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공무원들의 신년 휴가에 태클을 걸고 나섰다. 그는 TV로 중계된 장관들과의 회의에서 “부처와 각 소속 기관들의 경우 긴 신년 휴가를 허용할 수 없다”며 “적어도 위기 상황인 이번 신년만큼은 안 된다”고 주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푸틴은 이 발언 뒤에 곧바로 “여러분은 지금 내 말 뜻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전통적으로 신년 휴가를 가장 중요시하는 러시아는 내년의 경우 1월 1일부터 12일까지 연휴가 예정돼 있다. 메드베데프 총리도 “장관들은 당장 1월 1일부터 현 경제 상황을 챙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