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은 대개 도둑과 같이 찾아오는 병이다. 우연히 검진 갔다가, 길을 걷다가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는가 하면 심하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심장병을 앓는 환자들은 죽음도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때서야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인생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지난 세월 왜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그렇게 달리는 동안 잃어버리거나 간과한 것은 무엇인지, 죽음 다음의 생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된다. 그런 환자들의 손을 잡고 수술 전에 기도해주면 얼마나 감격해하는지 모른다. 내 책상서랍에는 그동안 환자들이 보내준 편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어떤 환자는 2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수술 기념일에 카드를 보내오고 있다.
나는 영적 회진을 돌기 전 성령님께 먼저 기도한다. 오늘 복음을 나눌 환자를 인도해 달라고 하면 어떤 환자가 마음에 떠오른다. 내가 환자 방에 들어가 침대 곁에 앉아 손을 잡으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로 무장해제된다. 치료가 아닌 이유로 자기를 찾아온 줄 알면 감격해하면서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그의 얘기에 끝까지 귀 기울인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느 순간 자기만 떠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 얘기만 해서 미안해요, 말씀하세요”라며 내게 말할 기회를 준다. 이때가 내게 찾아온 황금시간이다.
나는 먼저 두 가지 질문으로 상대방의 영적 상태를 진단한다.
“교회 다니세요?”
“얼마나 자주 다녀요?”
이 두 가지 질문만 하면 그가 자신을 그저 문화적인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지, 습관에 따라 교회를 다니는지, 주님을 제대로 만났는지를 대충 알 수 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고 있고 스스로도 크리스천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만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내가 만난 사람 대부분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복음을 전하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심장병을 얻은 것은 모두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심장병보다 더 큰 병을 고쳤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모세의 지팡이를 떠올리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모세가 버렸던 지팡이를 다시 집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듯 신학교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의사의 길을 걸었을 때 내게 의사라는 직업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됐다.
어느 환자의 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어떻게 왔어요?”
환자는 내게 자기 속내를 내보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아는 예수님에 대해 얘기하러 왔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의외로 “한번 해봐요”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심장수술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슨 할 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무엇인지를 나는 안다고 말해줬다.
“당신이 나의 문제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그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나의 가는 길을 돌려세워 주님이 만나주신 얘기부터 시작해서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이해가 되세요?”
마침내 이야기를 마치고 그에게 묻자 그는 아까와 달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얘기가 재미있어서 내가 유대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얘기를 해줘서 재미있었어요. 내가 병원을 나가면 꼭 성경을 읽어볼게요.”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수영 (9) 복음 전하는 ‘영적 회진’… 환자들도 큰 호응
입력 2014-12-29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