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상처를 별로 바꿔라

입력 2014-12-27 02:30

지난 주말 비행 여자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복지시설을 찾았다. 그곳에는 경미한 절도부터 흉기를 사용한 폭행 등 심한 비행까지 저지른 10대 소녀 40여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함께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이런 시설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예상과 달리 소녀들은 무척 밝았다. 함께 운동하고 장난치고 떠드는 모습은 여느 청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가요 ‘거위의 꿈’을 합창하던 한 소녀는 내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시설 관계자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라며 “‘상처를 별로 만들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처를 별로 만든다(Turn scar to star)’는 말은 영국 속담이다. 치욕스러운 일과 힘겨운 경험, 부끄러움을 딛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존경받는 존재로 변화해간다는 의미다.

이 소녀들 못지않게 올해 많은 ‘비행’을 저질러 국민들에게 분노와 걱정을 안겨줬던 곳이 바로 군(軍)이다. 4월 초 소형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청와대 상공까지 내려왔다가 돌아가던 중 추락한 사건으로 군의 허술한 방공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6월 말에는 적과 대치하고 있는 22사단 최전방 일반전초(GOP)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05년 경기도 연천 지역 GOP에서 참상이 발생한 지 9년 만에 총기사고가 반복된 셈이다. 긴장도 높은 GOP 부대에 심신이 불안정한 ‘관심병사’를 배치한 게 화근이었다.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임모 병장의 총구에 장병 5명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8월에는 전 사회를 분노케 한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윤 일병 사건은 군의 후진적인 병영문화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오랜 기간 엽기적인 집단구타가 자행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은폐됐다. 사고처리 과정도 부실 투성이였다.

전 세계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버전에 대응키 위해 만들어진 국군사이버사령부는 정치 댓글로 전 사령관 2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장성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급기야 해군 구조함 통영함의 납품 비리를 시작으로 줄줄이 드러난 군납 비리로 감사원 감사에 이어 1993년 율곡비리 사건 이래 최대 규모의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다.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당연히 곱지 않다. 군에 대한 신뢰도도 곤두박질쳤다. 지난 18일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4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마련한 22개의 병영혁신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내년 초 발간될 국민안보의식에 대해 올해 내내 조사해온 한 국책 연구원 관계자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신뢰도가 추락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군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민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던 미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미군은 절박한 심정으로 군 개혁에 나섰다는 점이다. 당시 미군은 군 전체를 바꾸지 않는 한 실추된 신뢰를 되찾기 힘들다고 봤다.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이 앞장서서 대대적인 국방 혁신에 나섰다. 의회까지 가세해 미군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로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는 국방개혁법 ‘골드워터-니콜스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 군에게서는 그런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상처’를 ‘별’로 만들겠다는 처절한 노력 없이는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몇 년마다 군에서 병영문화 혁신안을 마련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