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千鶴의 도시

입력 2014-12-27 02:20

겨울철 진객 두루미(학·鶴)는 한국과 일본에서 예전부터 기쁜 소식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문관들의 관복 흉배에는 두루미를 수놓았다. 옛 선비들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에 두루미를 보면 그해 운이 좋다고 믿었다. 두루미는 한 번 짝을 지으면 해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500원 주화의 뒷면에는 두루미가 있다. 학마을, 학선리, 대학리, 백학리 등 마을 이름에도 ‘학(鶴)’자가 들어간 곳이 많다. 일본의 향토 소주나 청주 명칭에도 학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 겨울철새로 찾아오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은 지금 세계적으로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돼 있다. 전체적으로 흰색 바탕에 정수리 부분이 빨간 두루미(멸종위기 Ⅰ급)는 전 세계적으로 생존개체수가 2800마리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철원평야와 경기도 연천, 파주 등을 합쳐 100마리 정도가 찾아온다. 전 세계에 약 6500마리로 추정되는 재두루미(Ⅱ급)는 국내에서 1500마리 정도가 월동한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민통선 지역 등에서만 볼 수 있다. 반면 흑두루미(Ⅱ급)는 따뜻한 곳을 좋아해서 전 세계 개체수의 약 85%인 1만여 마리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를 일본 규슈 이즈미 반도에서 보내고, 나머지가 한국에서 월동한다.

전남 순천시가 두루미 1000마리가 찾는 ‘천학(千鶴)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25일 순천시에 따르면 이날 순천만에 집결한 두루미과 새들이 1000마리를 처음 돌파했다. 흑두루미 966마리와 재두루미 35마리, 검은목두루미 4마리 등 두루미과 새 1005마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날아든 것이다. 1996년 순천만에서 두루미류 70여 마리가 처음 관찰된 이래 1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순천시가 내륙습지와 갯벌을 복원하고 농경지 내 전봇대 280여개를 뽑아내는 등 겨울철새가 마음 놓고 찾는 1급 생태관광지를 조성하려고 노력한 데 따른 보답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