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1부 애증의 한·일 관계]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잊고 죽고 싶은데…”

입력 2015-01-01 02:53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4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이병주 기자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한 나는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이 자리에서 일본의 못된 행태를 꾸짖을 거야.”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김복동(88) 할머니는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며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 할머니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다.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8년간 위안부로 모진 고초를 겪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과거를 밝힐 수 없었던 그는 죽은 듯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50대 중반을 넘기자 일본의 죄악을 덮어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가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동참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 할머니는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고 싶은데 일본이 일을 끝내지 않아 답답하다”며 “일본은 자신들이 한 짓에 대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집회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 할머니는 2년 전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으면 전쟁피해 여성을 돕겠다”고 선언하고 이들을 위한 ‘나비기금’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재일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후원금도 냈다.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그도 건강이 좋지 않다. 왼쪽 눈은 실명 상태라 선글라스를 쓰고 집회에 참석한다.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였음을 고백하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올해로 23년째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오히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일본군 만행에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올해 황금자 배춘희 할머니가 사망해 생존자는 55명에 불과하다. 50명은 국내에서 5명은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1993년 위안부 피해자 접수가 시작된 뒤 총 238명이 등록했다. 그중 183명이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눈을 감는 이들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며 가슴아파했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의 평균 연령은 88세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생존자 중 41명이 건강이 나쁘다고 대답했다. 혈전증과 당뇨, 각종 질병으로 요양원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도 적지 않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할머니도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