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세상 읽기]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입력 2014-12-27 02:52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장 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로서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사업가는 고객의 반응을, 정치가는 유권자의 반응을, 부하는 상사의 반응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말씀을 전하는 분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 진리인데”라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이 전하는 진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일어난다. 때문에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듣고 싶은 말씀은 무성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은 드물게 들린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드물게 들리는 말씀이야말로 성경의 핵심에 해당한다면 이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영접 이후에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화(聖化)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게 된다. 이때 어떤 말씀이 전해지는 가는 믿음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이 다소 불편해 하더라도 전해야 할 말씀들은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람이면 누구든지 부유한 삶과 편안한 삶을 본능적으로 바라게 된다. 어쩌면 그런 삶을 성취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분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만일에 말씀을 전하는 어떤 분이 부유함과 편안함 못지않게 가난함과 불편함을 강조한다면 이를 환영할 만한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후자를 가급적이면 전하지 않으려는 분들도 있다.

근래에 기독교가 점점 기복신학과 번영신학쪽으로 기울고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복 주시는 하나님과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성도들은 당연히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불편함이나 역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성화의 최상위에 다가선 사람들에게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나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 같이 용광로의 시련을 거친 다음에 순금 같은 믿음을 갖게 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저 세상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신구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겐 예외없이 ‘페이라스모스(peirasmos)’라 불리는 시험이 있었고 이런 시험은 저 세상에서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복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라 가려면 우리도 십자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성도들 가운데 행여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분이라면 주님이 허락하신 시험 즉, 페이라스모스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크게 사용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어렵게 만들어서 시련을 통해 인내를 만들고 온전한 인내를 이룸으로써 더 성숙하게 만드는 예수님의 뜻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정말로 광야와 같다. 믿음이 생기면 광야를 지나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바뀐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성취의 기쁨은 짧고 구하는 과정의 고통은 참 길었다. 이제 나흘 후면 새해가 밝아온다. 찬찬히 헤아려보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다.(끝)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