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의 역설… 쓰나미가 30년 내전도 쓸어갔다

입력 2014-12-26 02:56

높이가 10m나 되는 집채만 한 파도가 해안가를 삼켰다. 지진을 타고 온 파도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할퀴고 갔다. 집도, 가족도, 이웃도 물속으로 휩쓸려갔다. 남은 건 거리에 둥둥 떠 있는 시체와 완전히 부서진 마을의 잔해, 그리고 절망뿐이었다. 2004년 12월, 크리스마스 이튿날의 일이었다. 26일로 쓰나미가 인도양 연안을 덮친 지 10년이 됐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3의 강진은 인도네시아 인도 스리랑카 태국 소말리아 등 인도양 연안 14개국의 해안을 폐허로 만들고 23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장 큰 쓰나미 피해를 입은 곳은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주다. 주도인 반다아체에서만 7만여명이 숨졌다.

아체는 지금 다시 희망을 찾고 있다. 더 넓은 도로와 건물을 새로 짓고, 농업이나 어업도 재개되고 있다. 만일의 재앙을 대비해 사람이 몰리는 곳마다 대피로를 만들었다. 유치원에서도 대피지도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곳은 50억 달러(5조5000억원) 규모의 국제 원조를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많은 아체 사람들이 “쓰나미는 신의 시험이었다. 큰 슬픔 가운데서도 축복을 가져왔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쓰나미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30년 가까이 끌어온 내전이 막을 내리고, 세계 각국의 원조를 받으면서 바깥세상과의 교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유엔 직원인 인도네시아인 토미 수집토는 쓰나미가 발생한 이후 재건 과정을 보기 위해 매년 이 지역을 찾고 있다. 그는 “당시 아체에는 시체와 쓰레기더미만이 널려있었다”면서 “지금 아체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아체 주민 살라와티는 “쓰나미에 대한 기억은 여전하지만, 자식 세대를 위해 생업을 이어가고 지역의 다른 가족들을 돕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쓰나미로 부서진 옛집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새집을 지어 살고 있다.

쓰나미 이후 헤어진 가족들이 기적처럼 다시 만나는 일도 생겼다. 지난 8월 인도네시아 일간 콤파스는 아체 지역에 거주하는 셉티 랑구티와 자밀리아 부부가 쓰나미 당시 잃어버렸던 딸 라우다툴 자나(당시 4세)와 아들 아리프 프라타마(당시 7세)를 10년 만에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바다로 떠내려가다 어부에게 구조된 라우다툴은 아체주에서, 아리프는 서수마트라주에서 떠돌아다니다 지역 주민에게 목격됐다.

지역 재건 과정에서 치안 관리가 더 엄격해지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아체주가 쓰나미 피해를 복구하면서 태형을 허락하는 이슬람법(샤리아)을 도입해 최근 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국가재난관리청은 재건작업이 한창인 아체주에서 최근 집중호우로 홍수가 발생, 주민 12만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홍수가 가장 심한 동부 및 북부 지역에서는 침수 수위가 최고 4m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