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리를 행복하게 한 아홉가지 이야기] 서울 노원경찰서 아동청소년계·계장

입력 2014-12-27 02:18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웃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분들께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낯선 나라에 와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외국인 근로자, 엄마 리더십으로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 여경,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위로하는 목사, 슬픔에 빠진 안산시민을 돕는 ‘재래시장 장보기’를 진행한 목사, 볼리비아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 자살예방상담원, 개척교회 목사를 돕는 전직 의학전문기자, 꿈을 실현한 이 시대 ‘미생’, 신앙서적 후가공을 고집하는 인쇄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소개한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찰서죠? 새싹교 밑에서 중딩(중학생)들이 학교 ‘짱’을 가리기 위해 크게 한판 붙는대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서울 노원구 노원경찰서 아동청소년계 이미령(55) 계장은 3개월 전 이 같은 제보를 받고 당황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유명한(?) 당현천 ‘새싹교’가 아닌가.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사전 정보를 입수해 일단 주동자를 찾아내 원천봉쇄에 들어갔다. 급한 불은 껐지만 다리 밑의 우중충한 분위기가 문제였다. 고민 끝에 해답을 찾았다. 멋있는 대형 벽화로 우범지대의 싹을 자르는 것이었다. 바로 페인트 회사에 전화해 후원을 받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붓을 들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낙서를 지우고 꽃과 나비가 자유롭게 장단을 맞추고, 독수리가 하늘 높이 비상하는 모습 등을 그렸다. 문제아들의 아지트였던 곳이 화려한 야외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여고시절 꿈은 여경(女警) 제복을 입는 것이었다. 1979년 다른 친구들이 캠퍼스의 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외길을 선택했다. 그해 5월 7일 오매불망 그리던 제복을 입고 경찰관 배지를 달았다. 85년 서울 종암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는 의경들의 ‘전도누나’, 93년 서울 성북경찰서 시절엔 일대일 성경공부를 주도하는 등 신앙 메신저 역할을 했다.

12년 전 서울 노원경찰서로 발령받고부터 지경이 훨씬 더 넓어졌다. 지난해까지 선교회장을 맡으면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고 청소년을 선도하는 일에 앞장섰다. 경비계장 땐 ‘왕따, 고문관 의경’을 잘 보살펴 안전하게 제대시키는 등 ‘엄마 리더십’을 보여줬다.

지난 2월엔 아동청소년계로 발령을 받았다. 노원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단일 구 중 초중고(대안학교 포함)가 105개로 전국에서 학교가 가장 많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곳이다. 특히 지하철 4호선 노원역 9번 출구 일대는 수도권에서 청소년 탈선 장소로 소문날 정도로 유명했다. 이 계장과 팀원들은 새벽이슬을 맞아가며 유해업소 단속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금은 “노원구에서 청소년을 받는 업소는 망한다”는 말이 돌 정도다.

이 계장과 학교전담경찰관(SPO) 15명은 오늘도 호루라기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재학생 988명을 ‘또래 지킴이’로 임명해 학교 안팎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각종 폭력과 일탈행위를 입체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기존 ‘녹색 어머니회’를 활용한 ‘녹색 어머니학교 순찰대’는 타 경찰서로 확대됐다.

이 계장은 ‘감자탕교회’로 유명한 서울 도봉구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 권사다. 올해 희망을 묻자 이 계장은 “하나님은 계급엔 관심 없고요, 경찰 복음화에 더 신경을 쓰신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