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이훈삼] 헌법재판관 구성방식 유감

입력 2014-12-26 02:30

어느 정당이 민주사회 체제 파괴를 목적으로 삼거나 그를 위해 활동할 때 그 정당의 해산을 결정하는 것은 정당하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목적인 정당은 단호하게 그 활동을 정지시켜야 한다. 그 전제는 정당 해산 판결을 내리는 국가 최고 법률기관의 구성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952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개적으로 나치의 이념을 계승하여 폭력으로 민주정부를 전복하겠다고 천명한 독일사회주의국가당(SRP)에 대해 해산 선고를 내렸다. 부끄럽고 참담한 히틀러 시대를 경험한 독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연방의회(하원)와 연방참사원(상원)에서 8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연방의회는 정당 의석수에 따라 배분된 12인의 재판관선출위원회가 8명을 선출하고, 연방참사원은 의원들의 직접 선거를 통해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은 이를 재판관으로 선출한다. 최고 권위를 지닌 연방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방식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지 않고 최대한 민의를 반영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 심판, 탄핵 심판,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심판과 함께 정당해산 심판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당해산 심판 권한까지 가진 헌재의 권위는 공명정대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권력을 향해 거의 쟁탈전을 방불케 하는 정치구조에서 자칫 헌재의 정당해산 심판권이 특정 정당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정당이 민주질서에 위배되는지 헌재에 제소하는 권한을 정부가 가지고 있다. 정부가 검찰처럼 기소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기소하면 헌재가 판결을 내리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헌재의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재는 9명의 재판관으로 이루어진다. 대통령이 3명을 지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며,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가 선출하는 3명 중에는 야당 추천 몫이 1명 정도 있겠다. 형식적으로는 행정, 입법, 사법부가 공평하게 3권 분립 정신에 따라 국가 최고의 사법 판단 기관을 구성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회는 대부분 여당이 다수당이니 대통령과 같은 노선이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고, 헌재소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재는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대통령의 입장이 헌재 판결에 그대로 녹아들어갈 개연성이 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성향의 헌법재판관들이 다수라는 점도 지적된다. 이 때문에 통합진보당 해산이 8대 1로 가결된 것을 놓고 헌법재판관 구성의 구조적 문제점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견해가 진보 진영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관을 구성하는 비민주적인 방식 자체가 정치적 재판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물론 통진당이 해산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다. 헌법을 부정하고 폭력에 의한 진보적 민주주의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한 것은 대한민국 공당으로서 할 일이 결코 아니다. 통진당 해산 취지를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박탈이 불가피하다는 헌재의 결정도 통진당의 위험성이 크다는 인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종북과 진보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헌법재판관 구성 방식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나을지, 바꾸는 게 나을지 여야가 신중하게 검토했으면 한다. 6·10민주항쟁의 산물로 1988년 부활한 현재의 헌재 제도를 놓고 뒤늦게 왈가왈부한다고 치부하지 말고, 헌재가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헌재가 다른 정치적 현안에 대한 선고를 내릴 때 지금처럼 논란이 재연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여야 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헌법재판관 개개인들의 이념적 성향이 부각되면서 헌재의 권위를 훼손시킬 가능성도 있다. 불행한 일이다.

이훈삼 주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