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뱁새와 뻐꾸기

입력 2014-12-26 02:10

전 세계에 분포하는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는다. 대신 뱁새 때까치 멧새 노랑할미새 힝둥새 종달새 등 종이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의 이 같은 습성을 탁란(托卵)이라고 한다. 뻐꾸기와 접동새 등 두견이과, 오리과 등 5개 과 80여종의 새가 이런 습성을 갖고 있다.

이 새들은 부모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식 양육을 하지 않는다. 뱁새, 때까치 등이 탁란한 새의 알을 제 새끼인 양 정성껏 보살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늦은 봄이 되면 뱁새라고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자신보다 몸집이 서너 배나 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들은 탁란할 때 자기 알 색깔과 매우 비슷한 알이 든 둥지를 선택한다. 탁란 새들은 다른 새들이 둥지를 비운 사이 한 개의 알을 낳고 둥지에 있던 한 개의 알을 물고 나온다. 뱁새 등이 뻐꾸기 알을 쉽게 솎아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탁란한 새끼가 다른 새끼들과 오순도순 잘 살면 좋으련만 뻐꾸기 새끼는 저 혼자 살겠다고 뱁새 새끼들을 모조리 없앤다. 뱁새 새끼보다 먼저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양모(養母)’의 알을 모조리 밖으로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 한다.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없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뱁새와 뻐꾸기 생태를 예로 들어 통진당 해산을 정당화했다. 두 재판관은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한 뱁새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게 되지만 둥지에 있는 뻐꾸기의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역설적으로 자기 새끼를 모두 잃고 마는 법”이라고 말했다. 두 재판관은 통진당을 영악한 뻐꾸기에, 국민을 멍청하기 짝이 없는 뱁새에 비유했다.

다수 국민들은 헌재의 결정에 긍정적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올바른 결정’이라는 응답이 55∼65%로 ‘무리한 결정’(25∼35%)이라는 응답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국민을 뱁새 취급한 것에 대한 반응도 이럴지 궁금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