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웃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분들께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낯선 나라에 와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외국인 근로자, 엄마 리더십으로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 여경,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위로하는 목사, 슬픔에 빠진 안산시민을 돕는 ‘재래시장 장보기’를 진행한 목사, 볼리비아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 자살예방상담원, 개척교회 목사를 돕는 전직 의학전문기자, 꿈을 실현한 이 시대 ‘미생’, 신앙서적 후가공을 고집하는 인쇄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소개한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 24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새생명태국인교회(홍광표·최혜원 선교사)에서 만난 태국인 또노(31)씨 얼굴은 환했다. 그는 “요즘 공장에 일이 없어 쉬고 있다”며 “그래도 집처럼 포근한 교회가 있고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교회는 태국인 공동체 교회로 10여명이 합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노씨는 작년까지 웃을 일이 없었다고 했다. 3년 전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그는 경북 구미와 안산 일대 공장에서 하루 11시간씩 일했다. 주로 스마트폰 케이스용 플라스틱 프레스 작업을 담당했다. 일하다 잘못하면 혼날 때가 많았다. 한국말을 몰라 왜 혼나는지 몰랐다. 답답한 마음에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책에 나오는 한국말과 공장 언어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장 먼저 배운 말은 ‘빨리 빨리’였다.
또노씨는 빠르게 적응했다. 한국 오기 전 대만에서 5년을 일했던 터라 일도 쉽게 배웠다. 하지만 공장은 1년 365일 가동되지 않았다. 일이 몰릴 때는 서너 달은 휴일도 없었고 일이 없으면 몇 달을 놀았다. 급여는 130만∼150만원 수준. 가장 억울할 때는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농촌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돈을 부쳐야 했는데 답답했다.
일도 힘들었는데 부인까지 말을 안 들었다. 또노씨와 부인 엣(33)씨는 불교 집안이었다. 한국에 올 때는 부적까지 지니고 왔다. 그의 부모님이 한국 가서 돈 많이 벌라고 비싼 돈으로 구입한 부적이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첫 아들 ‘소원’이가 태어나자 아내는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반대했다. 하루는 말다툼 끝에 손찌검까지 했다. 아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종교 문제 때문에 헤어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그가 손을 들었다. 아내가 다니던 교회의 사랑이 그를 녹였다.
아내를 따라 나간 교회엔 태국인들이 많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계신다고 위로해주었어요. 그러다보니 제 마음도 풀어지더군요.” 답답한 마음에 어느 날 기도를 드렸다. 눈물이 났다. 기도 응답이라 여겼다. 그 순간 태국에서 가져온 부적을 불태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유튜브 동영상을 뒤졌다. 내친김에 방콕바이블신학교 통신과정에도 등록해 신학 공부도 시작했다.
“저에게 하나님은 평안함 가운데 인도하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구원하시고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는 살아계십니다.”
그는 1월부터 교회 인근 공장으로 출근한다. 컴퓨터 스크린 제조업체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출퇴근이 가능해 선택했단다. “돈 벌러 한국 왔다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태국으로 돌아가 교회를 돕고 싶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안산=글 신상목 기자·사진 허란 인턴기자 smshin@kmib.co.kr
[2014년 우리를 행복하게 한 아홉가지 이야기] 3년전 한국에 온 안산지역 태국인 근로자
입력 2014-12-27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