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웃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분들께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낯선 나라에 와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외국인 근로자, 엄마 리더십으로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 여경,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위로하는 목사, 슬픔에 빠진 안산시민을 돕는 ‘재래시장 장보기’를 진행한 목사, 볼리비아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 자살예방상담원, 개척교회 목사를 돕는 전직 의학전문기자, 꿈을 실현한 이 시대 ‘미생’, 신앙서적 후가공을 고집하는 인쇄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소개한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총무 엄진용(56) 목사가 교인과 함께 경기도 안산시 한 재래시장을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다. 그렇게 말하는 상인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서울 등지에서 안산 시장을 방문한 교인들을 반겼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로 불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안산. 관내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으로 인한 심리적 공황이 소비 위축을 불러 지역경제가 어려웠다.
엄 목사가 안산 보성재래시장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실종자 수색 작업이 한창이던 때다.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님께서 깊은 슬픔에 빠진 안산시민들을 돕자며 안산 재래시장 방문을 제안하셨어요. 이것이 우리 교단, 더 나아가 한국 교계 행사로 발전된 거죠. 저는 이 목사님 뜻을 받들어 작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참사 40일째이던 5월 27일 주일 오후 2시. 단원고에서 3㎞ 남짓한 보성재래시장엔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 등 2000여명의 ‘원정 장보기’ 크리스천들로 북새통이었다. 한국 교회와 한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안긴 ‘안산 희망나눔 프로젝트’의 첫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행사는 10월 10일과 12월 18일에도 이어졌다. 두 번째부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참여해 한국 교회의 섬김과 나눔 행사가 됐다. 인천순복음교회(최성규 목사) 교인 1200명이 지난 11월 11일 방문한 것까지 치면 총 4회가 이어졌다. 이를 전체적으로 지휘한 엄 목사를 지난 23일 여의도 기하성 사무국에서 만났다.
“지난 5월만 하더라도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지요. 많은 교인이 재래시장에서 나물과 밑반찬 등을 샀어요. 이 목사님도 시장 노점에서 붕어빵과 어묵을 사드시기도 했고요. 이불도 사셨지요. 우리는 상인과 시민들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했어요. 물건값도 깎지 않았고요. 각기 2만∼3만원어치씩 장을 봤어요.”
하지만 엄 목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연인원 수천명이 움직이니 무엇보다 사고가 없어야 했다. 버스 차량만도 한 회 50∼60대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소한 말다툼도 가십이 되기 쉬웠다.
“1차 원정 장보기 땐 시장 전체가 썰렁했어요. 상인들도 냉담했죠. 한데 서너 번을 찾자 ‘어디서 왔느냐’ ‘교회가 이렇게 신경써줘서 고맙다’ 등의 말씀을 하시며 마음을 열더라고요. 한국 교회 위상이 워낙 떨어져 우리들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교단 총무이자 수원 제일좋은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한 그는 농어촌교회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그렇다 보니 어려운 이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부친은 엄기봉(81) 원주 문막순복음교회 목사다.
“내년 2월 제4차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소리 없이 손 내미는 성도님들께 정말 감사하죠. 저는 제가 해야 할 일 당연히 한거고요.”
글=전정희 선임기자·사진=강민석 선임기자 jhjeon@kmib.co.kr
[2014년 우리를 행복하게 한 아홉가지 이야기] '안산 희망나눔 프로젝트' 진행한 엄진용 목사
입력 2014-12-27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