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웃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온 분들께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낯선 나라에 와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외국인노동자, 엄마의 리더십으로 청소년 선도에 앞장 선 여경,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위로하는 목사, 슬픔에 빠진 안산시민을 돕는 ‘재래시장 장보기’를 진행한 목사, 볼리비아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 자살예방상담원, 개척교회 목사를 돕는 전직 의학전문기자, 꿈을 실현한 이 시대 ‘미생’, 신앙서적 후가공을 고집하는 인쇄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소개한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 망하나 한번 봅시다.”
조정규(45·동숭교회 집사) 대표가 3년 전 출판 후가공 전문업체 ‘한진금박’을 인수, 최근까지 거래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온 얘기다. 후가공이란 책 표지뿐 아니라 캘린더나 상장 등에 금색 은색 녹색 등 다양한 색상의 알루미늄 호일 같은 금박들을 얇게 펴 찍어내는 일이다. 책 제목에 많이 활용되다보니 핀을 잘 맞춰야 한다.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이 일을 전혀 모르는 이가 대표라고 앉았으니, 수군댈 만했다.
“아마 거래처가 많이 옮길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기술자도 아니다보니 공장 및 직원들 관리하는 것도 힘들거라 예상했겠죠.”
실제로 조 대표가 맡고 일부 거래처가 떨어져나갔다. 매출이 40% 가까이 급감했다. 인쇄 사고를 낸 직원이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 대표는 동숭교회 표어이기도 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행복하게, 세상을 아름답게’를 사훈으로 삼고 이런 사업장을 꿈궜다.
하나님의 방법은 자연스레 열렸다. “제가 두란노서원에서 10년 가까이 일했거든요. 두란노에서 ‘옛 정’을 생각해 저에게 일을 맡겼어요. 서로사랑, 아가페 출판사 일도 하면서 CUP 출판사 제작대행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100여개 거래처 가운데 기독교 출판사는 10곳이 채 안 됩니다. 하지만 두란노에서 책을 많이 내다보니 기독교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35%를 넘습니다. 부족한 만큼 딱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사업장에서 늘 만납니다. 영성 가득한 책도 만들고 기독교 출판물 후가공을 맡은 보람이 큽니다.”
지난달로 사업체를 운영한 지 만 3년이 됐다. “거래처의 한 사장님이 ‘3년쯤 됐으니 이제 돈 벌거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얘기에 솔깃했는지, 방심했나봐요. 9∼10월에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냈어요.”
돈으로 물어내는 건 괜찮다. 그러나 한순간에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직원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보니 여간 마음이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때 암송한 말씀이 빌립보서 1장 20절이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거래처에선 또 사고칠까봐 일을 안 주고, 힘들었죠. 말씀을 암송하는데 문득 ‘직원들을 탓할 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만 행복하면 되는 일도 아니고요.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 ‘내년에 월급 더 주겠다’고 말하면서 격려했어요. 직원이 행복한 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고,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은 거죠.”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다. 그 다짐을 되새겨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음에 그는 감사했다. “내년 3월 새 기계가 들어오면 더 바빠지겠죠? 지금보다 더 많이 선교 후원금을 드리는 게 새해 목표입니다.”
글=노희경 기자·사진=허란 인턴기자 hkroh@kmib.co.kr
[2014년 우리를 행복하게 한 아홉가지 이야기] 기독교 서적 제작 ‘한진금박’
입력 2014-12-27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