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면서 정보경찰 개혁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경찰은 창설 이후 ‘음지’에 머물던 정보업무를 혁신해 제2의 문건 유출 사태를 막고 업무 성과를 높일 생각이다. 경찰청은 이미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2분실의 별도 사무실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개선안 대부분이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머리 정책’이란 지적이 나오면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정보부서에 과도한 ‘실적주의’가 팽배하고 윗선에 보고하기 위한 ‘정책정보’ 생산을 강요하는 실상은 외면한 채 정보경찰의 ‘발’을 묶는 방안만 강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용 프린터’로 바꾼다고 달라질까=경찰청은 지난 23일 서울경찰청 정보부에 정보업무 개선 방안을 통보했다. 여기엔 정보관들이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프린터를 ‘공용 프린터’로 바꿔 문서 출력 창구를 단일화하기로 했다. 복사기는 신분증을 갖다 대야만 작동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복사한 사람과 시간 등을 기록하는 ‘로그(Log)’ 관리를 위해서다. 프린터와 복사기 인근에 CCTV를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개인 재량을 제한하고 기록을 강화해 제2의 문서 유출 사태를 막겠다는 의도다. 이런 개선안을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까지 확대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의 정보 관련 부서는 보고서 실적주의 경쟁이 치열하다. 수시로 떨어지는 ‘특별요구첩보(SRI)’ 등에 맞춰 각종 보고서를 작성해야 실적을 인정받는다. 과도한 경쟁은 부작용을 낳았다.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정보1분실로 옮긴 짐 속 문건을 직원이 몰래 복사하면서 시작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공용 프린터를 설치하면 다른 사람의 보고서를 볼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데 있다. 정보업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은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부터 살고보자’는 인식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공용 프린터에) 출력한 문서를 가지러 갔다가 다른 사람이 먼저 인쇄한 출력물을 살펴보거나 심하면 가져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지방경찰청 정보부 경찰관은 “신분증을 사용하는 복사기 등 정보보안 시스템이 아무리 막강해도 개인이 마음먹고 유출을 생각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며 “공직자 소양과 정보보안 의식을 강화해야 할 문제인데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외면 받는 ‘졸병’…문건 유출의 이면=경찰은 정보보고서의 양과 질을 견줘 순위를 매기고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하위 10∼20%는 떨어져나가는 구조다. 정보분실은 본래 일선 베테랑 정보관들이 모이는 부서였다. 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실적주의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기존 정보 베테랑들의 자리를 ‘신입’ 정보관들이 대거 채웠다고 한다. 한 정보관은 “이런 (과도한 실적주의) 상황에서 동료애가 나오겠느냐. 속된 말로 새로 온 ‘졸병’을 누가 가르쳐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책정보’를 활성화하라는 지침도 정보업무에 균열을 만들었다. 정책정보는 정부 부처의 정책에 대한 여론 동향부터 부처별 비위 등에 관련된 정보다. 정책정보는 경찰청, 치안·상황보고는 지방청에서 담당해왔지만 최근에는 일선 경찰서조차 치안보고보다 정책정보를 쫓고 있다. 경찰 내부에선 ‘앞으로 경찰이 살아남으려면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존재감을 나타내려면 정책정보를 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국회와 각 부처, 기업 등을 담당하는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에 대한 정보 생산 압력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한 일선 정보관은 “경쟁이 심해지니 문서 유출 사태 같은 ‘무리수’가 나오게 된 것”이라며 “지역 치안정보를 발굴해봤자 지방청에서 점수를 안 준다. 본청에 보고할 ‘건수’를 달라는데 그건 정책정보와 범죄정보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현장 정보관들의 의견도 이해는 하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과 없이 허송세월하는 정보 경찰관이 많아 도입된 정책”이라고 해명했다.
서울경찰청은 정보부 산하의 정보1분실 범죄정보팀을 수사부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경찰청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 시절인 2011년 수사국에 범죄정보과를 신설하고 정보국의 범죄정보 부서를 해체했다. 서울경찰청은 곧 신설될 지능범죄수사대에 범죄정보 담당 인원을 배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단독] 靑 문건 유출 사건 계기‘음지의 정보경찰’뜯어고친다는데… 책상머리 대책 속출
입력 2014-12-25 04:16 수정 2014-12-25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