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정동극장 옆길, 하얀 2층 건물이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에서 을사늑약(1905)이 체결됐고 고종이 외국 사절을 만났으며, 이준 등 헤이그 밀사에게 밀지도 전달했다. 본래 덕수궁 안에 있었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밖으로 쫓겨났다. 궁궐 내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중명전(重明殿)이라 부른다.
집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다. 어떤 재료, 구도,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 모르는 사람에겐 지붕과 벽이 달린, 비바람을 막아주는 존재일 뿐이다.
부부 건축가인 두 사람이 우리나라의 전통 집, 절, 궁, 터를 찾아간 발자취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건축물의 역사와 배치, 자연과의 조화 등 전문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장면이 건물 위로 펼쳐진다.
“정동은 근대의 자국들이 가득하다. 정동교회는 1897년 고딕식으로 건립된 최초의 감리교 교회고, 배재학당은 1885년 아펜젤러가 세운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이다…. 슬픈 역사의 무성한 그림자들이다. 우리에게 강제 주입된 근대라는 시간의 박물관이다.”(206쪽)
철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지식이 건축물을 수식한다. 서울 종로의 종묘, 영주의 소수서원부터 안동의 도산서원, 담양의 소쇄원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건축물을 24개 분야로 나눠 소개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손에 잡히는 책] 부부 건축가가 살펴본 전통 집·궁·터
입력 2014-12-26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