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1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로비 벽면에 있는 대형 '부채(負債)시계'다. '부실 공기업의 대명사' '빚더미 공룡' 등으로 불리는 LH가 스스로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6일 이재영(57)사장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때 가로 7m, 세로 2m의 대형 부채시계 전광판에는 98,689,174,249,642원이란 숫자가 쓰여 있었다. 부채 감축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이 사장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국가 부채시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며 "직원들이 부채 규모를 체감하고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채시계 효과는 봤나. 실제로 얼마나 부채가 줄었나.
"부채 규모가 2013년(12월 말 기준) 105조6552억5865만4725원(105,655,258,654,725원)에서 현재 98조6891억7424만9642원으로 7조원 정도 줄었다. 정부가 도와준 측면도 있지만 직원들이 판매, 사업 다각화, 원가절감 등 여러 방면으로 절치부심 노력을 많이 했다. 부채시계에 대해 처음에는 부끄럽고 답답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지만 노력의 성과로 조금씩 숫자가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힘을 갖게 됐다는 직원이 많다."
-올해 성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사장실 한쪽에 있는 '구매 의사를 묻는 것만으로도 구매율을 35% 올릴 수 있다' 팻말을 가리키며) 저거 있잖아. 직원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올해 현재까지 토지와 주택을 합쳐 23조7000억원의 공급 실적을 기록 중이다. 올해 목표치인 17조8000억원의 133%에 해당하는 액수다. 대금회수 실적도 총 18조6000억원으로 목표치(14조2000억원)를 훨씬 초과했다.
-부채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데, 이유는 무엇인가. 향후 대책은.
"정부 정책에 따라 임대주택 등 공공사업을 많이 진행하는 LH의 특성상 부채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임대주택 1채를 지을 때마다 8000만원씩 부채가 늘어난다. 정부의 계획대로 매년 5만 가구씩 임대주택을 지으면 빚이 연간 5조원씩 늘어나는 셈이다. 어떤 형태로든 다른 데서 메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정적으로 부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판매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재고 자산이 87조원 정도다. 팔아야 되는 땅과 주택이다. 또 우리가 부담하는 사업비 규모를 자체 판매하는 범위 내로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은 자체 판매보다 사업비 규모가 많았다. 택지 공공 개발이든 뭐든 아마 그쪽 포션이 점점 커질 것이다. 금리가 낮아진 만큼 민간의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해야 한다. 민간 입장에서는 물량 확보의 의미도 있다. 부채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총력판매, 사업조정, 경영 효율화, 자산매각 등 4대 방안을 마련해 적극 추진 중이다
-내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보나.
"상반기는 괜찮을 것으로 본다. (조금씩 살아나는) 지금 추세가 이어질 거 같은데, 하반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유가 폭락 등 대외 변수가 워낙 요동을 치니까. 금리만 낮아진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국민 소득이 늘어나야 부동산도 살아난다."
-지난 9월 미국 뉴욕에 다녀온 뒤 등급이 상향 조정됐는데,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S&P는 뉴욕에 다녀온 얼마 뒤 우리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의 'A+'(안정적)에서 'A+'(긍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이어 10월 말에는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올렸다. 이제 우리도 대한민국 정부와 동일한 신용등급을 유지하게 됐다. 이는 그동안 LH가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 상황과 경영 실적을 크게 개선한 결과를 평가한 것이다. 직접 뉴욕의 국제 신용평가 기관을 방문해 그동안 LH의 구조조정, 금융부채 감축 노력과 결과를 설명했다. 그 사람들이 우리 관련 자료를 엄청 많이 갖고 있더라. 우리가 판매 등 여러 가지 지표 측면에서 호전되고 있고, 정부도 강력하게 지원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잘 설명했다."
-전세난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은데, LH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행복주택 등 정부 정책에 따라 우리가 하는 공급 외에 민간에서도 임대주택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에 있어 민간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문제는 수익성이 아니라 리스크다. 10년 임대가 주축을 이루는데 시장 상황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분양을 했을 때 수익이 날지 적자가 날지 알 수 없고, 대규모로 들어가면 분양에 각종 사회적 갈등 리스크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그런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주도록 신경써야 한다."
-내년에 본사가 경남 진주로 이전하는데.
"직원 1400여명이 내려간다. 자체조사 결과 90%정도가 혼자 내려가야 된다. 직원들 주거 문제 등에 대해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전체 사업의 60% 정도가 수도권에서 진행되고 있다. 본사를 이전하면 물리적 거리 때문에 수도권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되는 사안이 많이 생길 것이다. 본사 권한을 수도권본부에 많이 위임하는 문제도 조정하고 있다."
-직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나. '화통데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통과 화합을 주요 경영 방침으로 삼고 있다. 화통데이는 '화요일에 통(通)(화합·소통-화끈하게 통한다)함으로써 열린 경영을 실현한다'는 의미로 지난 2월부터 매주 화요일에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실시한다. 본사 각 처·실 부장, 차장, 과장 등 실무자들이 참석한다. 경영 현안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함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접촉함으로써 소통을 늘리자는 취지다. 내가 궁금한 것은 직원들한테 직접 물어보고, 직원들도 건의사항을 얘기한다. 요새는 밤늦게 전화하는 직원도 꽤 있다.
■이재영 사장은
1980년 국토부 행정사무관을 시작으로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국토부에서 보낸 토지·주택 분야 전문가다. 1957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원에서 도시계획 석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3회 출신이다.
2005∼2008년 건설교통부에서 토지국장, 국토균형발전본부장, 정책홍보관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기간에 기반시설부담금제 도입, 부동산실거래가격제 및 주택가격공시제 도입, 제4차 국토계획 수정계획 수립, 임대산단제 도입 등의 업무를 총괄했다.
2009년 초까지 주택토지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건축 관련 규제 폐지, 보금자리주택제 도입, 도시생활형 주택제 및 주택청약 종합통장제 도입 등에 기여했다.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 업무를 마무리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2009년 9월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 활동에 전념했다. 2011년 경기도시공사 사장으로 근무했고 지난해 6월 LH 사장에 취임했다.
성남=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오종석 산업부장이 이재영 LH사장을 만나다
입력 2014-12-2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