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과장과 부장을 달고, 유학을 떠났다가 복귀한 뒤 30대에는 상무나 전무로 승진하고, 40대는 사장 급으로 승진한다. 우리나라 30대 그룹의 3, 4세 후계자들이 거치는 일반적인 승진 코스다. 일부 후계자들은 뛰어난 사업 역량을 인정받기도 하고, 일부 재벌 3, 4세들은 평사원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 오너 자녀라는 게 빠른 승진의 주된 이유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벌 오너 자녀들에 대한 검증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은 23세이던 1991년 삼성전자 부장으로 입사해 21년 만인 2012년 부회장이 됐다. 이 부회장은 부장 입사 이후 10년 정도 유학을 떠났고, 33세에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재입사했다. 실질적인 근무는 임원으로 시작한 셈이다. 이후 상무(35세), 전무(39세)를 거쳐 40세이던 2010년 삼성전자 사장이 됐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44) 현대차 부회장은 24세에 현대모비스(구 현대정공) 과장으로 입사해 5년 만인 29세에 임원이 됐고, 다시 3년 후 전무가 됐다. 35세에 기아자동차 대표가 됐으며 39세에 현대차 부회장이 됐다. 입사 20년 만에 부회장이 됐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36) 상무는 지난달 상무로 승진했다. 28세이던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시작해 2년간 미국 유학을 마친 뒤 32세이던 2010년 금융팀 과장으로 승진했고, 4개월 뒤 LG전자 차장으로 승진했다. 올 4월 LG의 부장으로 옮겼다가 7개월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입사 후 8년 만에 대리에서 상무가 됐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2녀1남을 뒀는데, 나이가 어려 그룹에서 별다른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큰딸 윤정(25)씨는 아트센터 나비에서 어머니인 노소영씨를 돕고 있고, 둘째 딸인 민정(23)씨는 최근 해군 장교로 입대했다. 아들인 인근(19)군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자녀들도 20대로 그룹 내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장남인 유열(28)씨는 일본에서 일본 기업에 다니고 있다. 두 딸 규미(26)씨와 승은(22)씨는 모두 일본 유학 중이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 기선(32)씨는 2009년 27세에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지만, 유학길에 올라 지난해 6월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1년 만인 지난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정 전 의원의 큰딸인 남이(31)씨는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 딸 선이씨는 미국에 있고 막내아들 예선(19)군은 재수생이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 허윤홍(35) 상무는 23세이던 2002년 GS칼텍스 평사원으로 입사해 과장과 차장, 부장을 거쳐 32세 때인 2011년 상무보로 승진했고, 이듬해 상무가 됐다. 입사 9년 만의 임원 승진이었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1남2녀를 뒀다. 장녀인 조현아(40) 전 부사장은 25세에 팀장으로 입사해 6년 만인 2005년 31세에 상무보가 됐다. 장남 조원태(39) 한진칼 대표도 28세이던 2003년 그룹 계열사 차장으로 입사해 3년 만인 2006년 말 상무보로 승진했고, 지난해 한진칼 대표가 됐다. 막내인 조현민(31·여) 대한항공 전무는 24세인 2007년 과장으로 입사한 뒤 3년 만인 27세에 상무보로 승진했다. 전무가 된 것은 29세였다. 재계에서도 비교적 승진이 빠르다는 평을 들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은 모두 한화에 근무하고 있다. 장남인 김동관(31)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은 지난 24일 상무로 승진했고, 차남 동원(29)씨는 경영기획실 디지털 팀장으로, 막내 동선(25)씨는 한화건설에 근무 중이다. 두산 박용만 회장의 큰아들 박서원(35)씨는 홀로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다 지난 10월 두산그룹 광고계열사인 오리콤 광고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둘째 아들인 재원(29)씨는 두산 인프라코어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46) 부회장은 1995년 26세에 삼성물산에 입사했다가 이듬해 신세계 임원이 됐고, 2006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CJ 이재현 회장의 장녀 경후(29)씨는 CJ오쇼핑 과장으로, 아들 선호(24)씨는 CJ제일제당 평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LS그룹 구자열 회장의 아들 동휘(32)씨는 LS산전 차장으로,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의 아들 세창(39)씨는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아들 남호(39)씨는 동부팜한농의 부장, 코오롱 이웅열 회장의 아들 규호(30)씨는 코오롱글로벌 부장이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은 3남을 뒀는데 장남인 현준(46)씨와 3남인 현상(43)씨는 ㈜효성의 사장과 부사장이지만, 둘째 아들인 현문(45)씨는 조 회장과 사이가 틀어진 상태다. KCC 정몽진 회장과 한라 정몽원 회장, 태광 이호진 회장의 자녀들은 20대로 아직 그룹에서 맡는 직책이 없다.
우리나라는 그룹 오너 3, 4세들이 승진하는 데 별도의 규정이나 절차가 없다. 이사회를 거치지만 형식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의 경영승계는 철저하게 이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사회에 후계구도와 절차 등이 보고되고, 다양한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들이 이뤄진 뒤 최종적으로 후임 CEO가 결정된다. 미국의 상장회사는 기업의 경영 승계 계획에 대한 사항을 포함하는 기업지배구조지침을 채택하고 공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원적 이사회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은 감독이사회가 경영이사회와 함께 장기 승계 계획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창업자 2세들이 지분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월마트도 4명의 독립이사들로 구성된 보상·지명·지배구조위원회가 CEO 및 경영 승계를 담당하도록 한다. 2세들이 지배주주이지만, CEO 승계는 독립이사로 구성된 위원회의 영역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송민경 팀장은 25일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경우 상장기업은 승계 후보군을 형성한 다음 선출 기준이나 절차 등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확인받으며 역량을 검증하는 데 5∼6년의 시간을 갖는다”며 “한국적 상황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오너 일가에 대한 중장기의 경쟁 및 역량 자질을 검증하는 최소한의 과정은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경제 히스토리] 경영승계 그들만의 리그… 美선 5∼6년 이사회 검증 거쳐야
입력 2014-12-26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