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해킹의 배후’로 지목된 뒤 연일 고초를 겪고 있다. 잇따라 인터넷 사이트들이 마비되고 있어서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해킹 경유 국가’로 지목한 중국을 ‘공동 조사’ 카드로 압박을 가하자 중국이 ‘중립’ 입장을 표명하면서 북한만 ‘미아’가 될 위기에 처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암살을 소재로 다룬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해킹에서 시작된 사이버세계의 갈등이 국가 간 사이버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 양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 48개 중 32개가 접속불능”이라고 밝혔다. 전날 북한의 대외 선전용 인터넷 사이트 대부분이 ‘먹통’이 됐고, 북한 당국이 급히 복구에 나섰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버가 설치된 국가를 기준으로 중국의 ‘우리민족끼리’, 일본의 ‘민족시보’, 미국의 ‘조선의 노래’ 사이트 등이 마비됐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싱가포르 등 서버설치 국가를 가리지 않고 불능 상태다.
앞서 북한은 배후설을 강하게 부정했지만 국제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소니 픽처스 해킹을 ‘사이버 반달리즘’(vandalism·야만적 파괴행위)으로 규정한 뒤 ‘비례적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라는 ‘무대’도 활용했다. 소니 해킹을 ‘사이버 테러’로 규정하고 ‘국제사회 대(對) 북한’의 대결 구도로 내몰았다. 북한인권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한 안보리는 회의에서 해킹 사건을 함께 거론하며 미국에 호응했다. 북한은 인권결의안 안보리 의제화로 한방 먹은 상황에서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세계에서까지 ‘외톨이’ 신세가 돼버렸다.
우리 정부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인터넷 마비와 미국 개입 가능성에 대해 “엔시엔디(NCND)”라며 ‘확인도 부인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북한의 맹방인 중국 입장이 복잡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소니와 남한 한국수력원자력 해킹에 동원된 것으로 조사된 서버가 중국에 소재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섣불리 북한을 옹호하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사이버 ‘공공의 적’ 된 北
입력 2014-12-25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