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서 쪽방촌까지 “사랑과 평화의 구주 오셨네”

입력 2014-12-25 02:19
성탄절을 앞두고 24일 서울 노원구 밥상공동체·서울연탄은행 관계자들이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 입구에서 촛불을 들고 이웃에 대한 섬김을 염원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사업 실패 후 4년 전부터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머물고 있는 김진강(69·가명)씨. 전 재산을 잃고 가족도 모두 떠나버린 데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는 “월세 20만원짜리 2평(6.6㎡) 남짓한 방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며 가장 힘든 점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24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한교봉·대표회장 김삼환 목사)은 이날 동자동을 찾아 ‘쪽방 주민과 함께하는 성탄행사’를 열고, 주민 300여명을 성민교회로 초대해 음악공연을 선사했다. 공연을 기다리며 웅성거리던 주민들은 기타리스트 이강호군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자 조용히 눈을 감고 감상했다. 국악그룹 ‘타고’가 장구와 북을 치며 아리랑을 부를 때는 “얼씨구”라며 추임새도 넣었다. 한교봉은 공연을 마친 후 도시락과 휴지 등이 담긴 성탄선물을 전달했다. 일부 주민들에게는 겨울철 붕어빵과 군고구마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기계대여 비용도 지원했다. 23일에는 쪽방 주민 40명과 함께 충북 충주 수안보온천을 방문해 목욕을 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한교봉 최희범 상임고문은 “앞으로도 쪽방촌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역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섬김 활동이 한국교회의 성탄행사로 자리 잡았다. 성탄을 하루 앞둔 이날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성도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했다.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멸시·천대 받던 자들의 친구가 돼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 예수의 발자취를 재현하기 위해서다.

서울역광장 신생교회(김원일 목사)와 ㈔국제사랑재단,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이날 서울역 노숙인 급식센터인 ㈔해돋는마을에서 ‘2014 서울역 노숙형제와 함께하는 성탄축하예배’를 드렸다. 트럼펫 연주자 장윤철과 신생교회 성가대 등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 500여 노숙인들도 찬송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으로 성탄의 기쁨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는 성탄의 기쁨이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도했다.

기장 총회장 황용대 목사는 “하나님을 믿으면 하늘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질 수 있다”며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격려했다.

노숙인들에게는 방한복과 떡과 다과가 든 선물꾸러미를 나눠줬으며 자원봉사자 100여명은 역 일대를 돌며 거동이 불편해 행사장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노숙인들은 안형준 건국대 건축대학원장의 선창에 따라 ‘술은 마시지도 말고 권하지도 맙시다. 당신이 마시는 술은 가족들의 눈물이요 형제들의 고통입니다’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한 50대 노숙인은 “비록 거리에서 잠을 청하지만 낮은 데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열악한 처우와 대량 해고 우려로 최근 뉴스에 오르내렸던 아파트 경비원들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민 곳도 있다. 인천 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는 이날 교회 인근의 대림아파트 등 6개 아파트 단지에 근무하는 경비원들과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성탄 케이크 310개를 전달했다.

주승중 목사는 “최근 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이분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성탄의 기쁨이 함께 전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은 이날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앞에서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 200여명과 함께 독거노인 가정 등에 연탄을 배달했다. 연탄은행은 성탄절을 계기로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의 연탄 300만장 보내기’ 운동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독시민단체인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고난함께)’은 특별한 성탄 새벽송을 준비했다. 매년 성탄절마다 현장 노동자들과 장애인을 찾아가 위로해온 고난함께는 이날 광화문 장애인농성장을 비롯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과천 코오롱, 인천 부평 콜트·콜텍, 재능교육 등 총 7군데 거리농성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위로했다.

이사야 유영대 박재찬 기자 Isay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