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예비신부 A씨에게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웨딩드레스숍에서 갑자기 “내일 드레스를 내드리지 못할 것 같다”는 전화가 오더니 결혼식 도우미와 예식 촬영 등에 잇따라 차질이 생겼다. 모두 두 달 전에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웨딩박람회에서 계약을 마친 것이었다. 유명 방송사 이름을 내세운 행사라 의심 없이 계약했는데 모든 게 꼬여버렸다. 박람회를 개최했던 웨딩컨설팅업체 ‘동양웨딩앤허니문’은 파산신청을 할 예정이라며 손을 들어버렸다. 이 업체 대표 이모씨는 잠적했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은 그렇게 엉망이 됐다. A씨는 24일 “생애 최고로 기뻐야 할 날에 결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양웨딩앤허니문은 방송사 이름을 빌려 ‘SBS 웨딩페어’ ‘MBC 웨딩박람회’ 등을 개최한 업체다. 대표 이씨는 지난 18일 직원들에게 “파산 신청했으니 다 정리하라”는 문자 1통만 달랑 남기고 사라졌다. 이 업체는 이달 초까지도 버젓이 웨딩박람회를 열었다. 부도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계약을 맺고 돈을 받았다. 계약자들은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예비부부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에는 지난 주말부터 ‘SBS 웨딩 부도 맞나요’ ‘모두 입금 완료했는데 보상은 못 받나요’ 등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예비신부는 “다음 달 드레스를 고르기로 했는데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했다.
이 업체는 마땅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표가 잠적한 지 1주일 정도 지난 23일에야 파산 위기 사실을 알렸을 뿐이다. 이 업체와 계약한 예비부부는 200쌍이 넘는다. 업체 관계자는 “아직 파산 신청을 한 건 아니지만 대표가 잠적한 것은 맞는다”며 “다른 사업가가 그대로 인수하기로 했고 웨딩플래너가 계속 계약을 담당하기 때문에 고객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불안감에 계약을 파기하려는 이들에게 환불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새로 인수한 사람이 책임질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 업체는 지난달 8∼9일 웨딩박람회 개최 당시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웨딩박람회에 다녀간 예비부부는 1만명이 넘는다. 웨딩업계 관계자는 “자금 사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박람회를 열고 박람회에 온 고객들로부터 받은 중도금으로 자금난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웨딩컨설팅업체는 영세한 경우가 많다. 계약 때 위약금 조항 및 특약사항 등을 확인하고 꼭 서면 계역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결혼식 하루 앞둔 신부에 “내일 드레스 못 내드려요”
입력 2014-12-25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