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유출됐다 반환된 ‘데라우치 문고’ 서화 컬렉션에 위작설이 제기됐다. 내년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아 정부가 환수 실적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돌아온 문화재에 대해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등의 총체적 점검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의 서화 컬렉션 중 경남대가 기증받은 ‘낙파필희첩’ 6점이 종이와 먹, 표현법, 제발(그림에 적힌 글) 위치 등으로 볼 때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위작이라고 밝혔다. 낙파필희첩은 조선 중기 사대부 화가 이경윤(1545∼1611)의 작품으로 알려진 산수인물화 6점을 화첩으로 엮은 것이다. 표지 상단에 낙파필희(駱坡筆戱·낙파가 붓을 희롱하듯 분방하게 그렸다는 뜻)라고 쓴 표제가 있다. 낙파는 이경윤의 호다.
이 교수는 “종이가 강점기 이후 들어온 펄프 등이 섞인 양지이며, 먹 또한 공장에서 가공한 먹물을 사용해 담묵의 맛이 전혀 없다”며 “일본 남화풍 영향을 받은 듯 나무 사이로 운해를 그려넣는 등 전통회화에서는 쓰지 않는 구성법이 구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관료와 부유층이 서화 수요층으로 부상하며 가짜가 대거 나돌았다.
지난 16일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경남대 소장 데라우치 문고를 학술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개최한 특별강연회에서도 진작(眞作)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낙파필희첩 글은 유몽인과 이호민의 필체가 아니며 그림 수준도 고르지 않아 원작(原作)을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제작 시기는 이경윤 사후 17세기로 추정했다.
‘홍운당첩(烘雲堂帖)’에 실린 그림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해당 작가의 보편적 화풍과는 너무 다른 풍격을 갖춰 진위가 의심스러운 작품이 포함돼 있다”며 이정의 ‘묵죽도’, 심사정 ‘초충도’, 정선 ‘한강독조도’ 등을 예로 꼽았다. 화첩에는 조선시대 대가들뿐만 아니라 덜 알려진 중인 화가들까지 포함한 14명의 그림 28점이 담겨 있다.
혹독한 무단통치를 자행했던 데라우치는 고미술품 컬렉터로도 유명했다. 1916년 일본 귀국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에 기증한 미술품에 백자철화포도문호(국보 제93호) 등 국보·보물급 자기와 회화가 망라돼 있던 것에 비하면 경남대 반환 서화 컬렉션은 그의 안목이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황평우 문화재전문위원은 “일본으로부터 기증받거나 구입한 문화재의 경우 데라우치 문고 외에도 김시민 선무공신교서, 경복궁 자선당 유구처럼 진위 논란이 있거나 파손 상태가 심각한 것이 적지 않다”며 “환수 실적에만 치중하지 말고 제대로 돌려받았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단독] 데라우치 서화 컬렉션 6점 이상이 가짜?
입력 2014-12-25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