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강은총양의 행복이 무너진 건 순식간이었다. 재주 많고 성격이 밝아 언제나 주변에 친구가 많던 아이였다. 웃는 얼굴로 친구들과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시절은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옛날얘기가 됐다.
은총이의 아버지는 요리사였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다섯 식구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둘째 딸 은총이가 하고 싶다는 건 뭐든 지원했다. 예체능에 재능이 있어 한국무용, 발레, 노래 등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노래 연습을 할 때는 악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몰두하며 행복해했다.
아버지는 지난해 2월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병원에 입원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는 “괜찮다. 일어날 거다”라며 은총이를 안심시켰었다.
‘딸 바보’ 아버지의 빈자리는 컸다. 어머니는 삼남매를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두세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언니는 대학을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집에는 막내 남동생과 은총이만 남게 됐다. 은총이는 남동생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며 꿋꿋하게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밤에는 견기기 어려울 정도로 아버지가 그리웠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삼남매의 야참을 챙겨오는 걸 좋아했다. 퇴근길 아버지를 가장 먼저 맞는 사람은 언제나 은총이였다. “밤에 출출할 때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요. 그런 밤이면 아버지와 야식 먹는 꿈을 꿔요”라고 했다.
나쁜 일은 잇따라 일어났다. 남동생 아침밥을 챙겨주고 급하게 학교로 뛰어가다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다. 무용가를 꿈꿨던 은총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의사는 다리 인대가 손상돼 깁스를 권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걷는 게 불편해도 견뎠지만 얼마 후 탈이 났다.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 혼자 화장실 가기도 어려워졌다.
학교에 빠지게 됐고 무기력해졌다. 모든 일이 귀찮아졌고 멍하니 혼자 집에 있다가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을 다잡았다. “하늘에서 아버지가 보고 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다리가 아팠지만 어머니가 퇴근하면 곧바로 쉴 수 있도록 집안일을 했다. 다리가 조금 호전되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로 돌아가는 건 뒤로 미뤘다. 돈을 벌고 싶었다.
은총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가를 배웠다. 아픈 다리에 좋은 재활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은총이에게 요가는 딱 맞는 운동이었다. 무용을 했던 은총이를 요가 강사가 눈여겨봤다. 은총이에게 요가 강사가 돼보라고 권유했다. 요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올해는 학교에도 복학했다.
복학 후 요가 자격증에 도전해 3급을 따냈다. “화장실 갈 때도 요가 생각만 했다.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옛날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고 했다.
은총이는 올 가을부터 ‘국민일보 꿈나눔 캠프’에 합류했다. 은총이가 복학한 학교에서 진행된 위기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게 계기였다. “제 꿈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어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일 새벽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서 열린 ‘풍등(風燈) 날리기’에도 나왔다. 새해 소망을 풍등에 담아 날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은총이는 풍등에 ‘요가 자격증 다 따기’ ‘강철 체력’이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은총이는 “힘들 때 하늘을 보며 ‘아빠, 나 잘하고 있지’라고 다짐하곤 해요. 이번에도 아빠가 지켜보셨을 거예요”라며 웃었다.
강릉=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요가 자격증 따기·강철 체력 소망 아빠께 띄웠어요”… ‘국민일보 꿈나눔 캠프’ 참가 은총이의 꿈
입력 2014-12-25 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