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지난 한 해를 둘러보고, 다가올 새해를 설계하는 마음들이 분주하다. 연초에 목표한 일을 제대로 매듭지었는지, 새해에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 만큼 익숙할 만도 한데 그게 도무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시간의 구획’은 참으로 오묘하다. 연, 월, 일, 시 등 시간의 구획은 오랜 동안의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해, 달, 별, 기후, 계절 등 천체와 자연의 변화에 대한 끈질기고 세밀한 관찰, 분석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시간을 나누고 따지기 시작했을까. ‘보다 나은 삶’ 혹은 ‘효율적인 일상’ 등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본다.
시간의 구획 덕분에 우리는 계획이 가능하고 어제와 오늘, 내일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2014년을 돌아본다. 커다란 보람과 함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적잖다. 우작경탄(牛嚼鯨呑)을 떠올린다. 중국사람 진목의 ‘정독할 책은 정독하고, 다독할 책은 다독하라’는 독서법이지만 필자는 이를 한 해의 회고에 대입해 본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일이 있고, 고래가 바닷물을 들이켜 먹이를 골라 먹듯 통 크게 털고 갈 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정말 쉼 없이 달려왔고, 많은 일을 해냈다.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고 아쉬움 또한 없지 않다. ‘미련은 후회의 그림자일 뿐’이라며 일 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두 가지 잣대를 일러준 지인이 있었다. ‘구성원들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커졌는가?’와 ‘안팎에 얘기한 내일에 대한 그림을 얼마나 구체화했는가?’가 좋은 잣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일 년을 농사에 비추어 본다. 홍수에 무너지고 떠내려간 논과 밭을 새로 복구해서 병충해에 강하고 수요가 많은 작물을 골라 정성껏 씨를 뿌린 한 해였다.
강력한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과 4대강 사업에 따른 막대한 부채 문제 등으로 회사는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임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국민과 정부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았다.
희망과 자신감이 중요했다. 내부적으로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에 대한 소통과 공감대 확산에 많은 힘을 쏟았다. 전국 곳곳의 직원들을 찾아 수없이 많은 대화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바로 서고 멀리 뛰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매우 중요했다. 외부 기관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회, 정부 등과 각종 현안에 대한 적극적 협의와 더불어 미래지향적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물 관리를 이루어야 했다. 상생협력위원회, 정책자문회의 등을 구성했고 지자체, 대학, 연구기관 등과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갔다.
조금씩 미래 성장기반 확충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통합 물 관리를 비롯한 과제별 추진 계획이 마련되었다. 파주 스마트 워터 시티 시범사업으로 건강한 수돗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토대를 쌓았고, 충남도 등 지자체와의 협약을 통해 국민 물 복지 실현을 보다 구체화했다. 시화 수변도시에서 내일의 미래 도시 모습을 그려 보았고, 필리핀 앙갓댐 운영을 시작으로 우리 물 관리 기술의 해외 수출 길도 한층 넓혔다.
다사다난했던 갑오년 청마의 해 2014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키우고, 미래 비전의 새싹을 틔운 한 해임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청양띠의 해인 2015년이다. 서있는 건 발걸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새싹을 틔웠으면 다음 차례는 양묘회신(良苗懷新·새싹에 새 기운이 가득하다)이다. 잡초나 덤불이 새싹의 바른 성장을 막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김매고 열심히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2015년은 실행과 혁신으로 성과를 거둬야 한다. 양들이 뛰어노는 푸른 들판,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을미년을 향한 발걸음에 다시 힘을 싣는다.
최계운 K-water 사장
[CEO 칼럼-최계운] 우작경탄 2014
입력 2014-12-25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