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절감한다. 어느새 연하장 몇 장이 책상에 놓였다. 묵은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축원하는 지인의 기원이 고맙다. 연하장을 보낸 것이 언제였나. 주변에 대한 무심함을 자책한다. 솜털이 일고 이끼 무늬가 박힌 연하장 속지에 쓰여진 인사의 힘은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다.
올해는 연하장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1일까지 판매된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은 전년 대비 370% 급증했다. 선물을 대신하겠다는 경기불황 여파에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열풍까지 겹쳤기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연하장이 인기를 끌면서 “○○님, 신년 연하장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스미싱 사기까지 등장했다.
연하장의 유래는 15세기 말 독일에서 비롯됐다. 요즘과 같은 연하장은 19세기 후반 영국, 미국 등에서 크리스마스카드에 신년 인사를 덧붙인 데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연하장은 새해를 맞아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문안하던 명함(名銜)세배와 문안단자(問安單子·윗사람에게 안부를 여쭈면서 올리는 글)가 모태였다. 공식 명칭을 얻은 최초의 연하장은 1890년 우정국이 발행한 것이다. 가로 17㎝, 세로 11㎝ 크기의 이 연하장은 우정국 청사와 우정국 관리들을 배경으로 하고 아래에 신년 축하 인사를 담았다.
연하장에 대한 전직 대통령들의 인식은 다양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말연시를 검소하게 보내자며 한때 연하장 안 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홈페이지 회원 40여만명에게 인터넷 연하장을 발송했다. 폐렴 투병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근 내외가 두 손을 꼭 잡고 서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표지로 한 연하장을 돌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보낸 연하장을 두고 말들이 많다. 박 대통령이 직접 수놓은 자수 디자인에 덕담이 쓰여진 연하장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날인 지난 19일 부쳐진 것으로 알려져 묘한 해석을 낳았다. 적조함을 달래려는 연하장이 씁쓸함만 더한 것 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연하장
입력 2014-12-25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