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과 훈련을 시작한 12명의 수련의 중 가장 똑똑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 3명의 외과 수련의로 남게 됐다. 모두가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분별이 생긴 덕분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 순간 걷거나 생각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과 말하는 중에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지혜를 의지하려고 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누가 나를 대적하리오.’ 새벽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져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자주 금식기도를 하곤 했다. 하나님을 만나고도 지난날의 잘못된 습관이 나타날 때마다, 어려운 레지던트의 고비를 넘을 때도 금식하며 주님께 매달렸다.
때로는 육신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문득 살아나는 이 죄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는 자신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육신이 하자는 대로 삼시 세끼 밥을 다 먹고 자고 싶다고 다 잘 순 없어”하면서 말이다.
하루는 대학 동창과 술을 마시면서 하나님 얘기를 했더니 동창이 “어이, 술이나 마시지”라고 해 그날로부터 술을 끊었다. 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는 말씀을 읽고는 담배를 끊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 몸이 성전이라는데 독한 연기를 뿜어 넣을 수 없어서였다. 담배만큼은 금주했을 때처럼 한 번에 되지 않았지만 결국 금연을 위한 3일 금식을 하고 났더니 담배와 영원히 이별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 일반외과 수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혈관외과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텍사스심장센터 합격통지서를 받고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가까이 지내는 두 가정과 기회 있을 때마다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가정과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내 혀가 돌아가며 기대하지도 않던 방언이 터졌다. 아내도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다 방언이 터진 뒤 밤이면 아이들을 재운 다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오랫동안 방언하고 통변하는 은사를 체험하곤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사를 경험하며 영적으로 충만한 때에 “당신이 휴스턴으로 가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인지 그 말을 듣고 몹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는 중에 때로 사탄의 궤계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집 밖에서는 일체 은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런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가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차례를 따라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26∼33)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영적인 분별과 안목이 생겼다. 사람들은 부흥회 때 안수받기를 바랐지만 나는 함부로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런 훈련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주셨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목이 마른 사슴 같았고, 언제든지 하나님과 만나기를 소망하며 간구했다. 이것은 주님의 생명이 내 맘 속에 있다는 증거였다.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한 날부터 성령님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들와와 계셨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수영 (7) 난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목마른 사슴이었다
입력 2014-12-25 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