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총알 14발 난사’ 백인 경관에 면죄부

입력 2014-12-24 03:07
미국에서 비무장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관에 대해 또다시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올해 들어 미주리주 퍼거슨, 뉴욕,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이은 네 번째 ‘면죄부’성 결정이 내려지면서 소강국면을 맞았던 인종차별 철폐 시위가 재점화될지 주목된다.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검찰은 지난 4월 흑인 돈트레 해밀턴(31)에게 권총 14발을 쏴 숨지게 한 크리스토퍼 매니 전 경관의 행위가 공무집행에 따른 정당방위였다며 기소하지 않기로 22일(이하 현지시간) 결정했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이 여전히 도마 위에 올라 있는 가운데 내려진 이번 결정으로 재차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매니 전 경관은 밀워키 시내 레드애로 공원에서 잠을 자는 흑인이 있다는 불만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직전에 2명의 경찰관이 해밀턴의 혐의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갔지만 이를 몰랐던 그는 재차 몸수색에 들어갔다. 흥분한 해밀턴과 몸싸움을 벌이다 지휘봉을 빼앗기자 매니는 곧바로 권총을 뽑아 14발의 총알을 퍼부었고 해밀턴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유가족은 “정신분열 증세로 치료를 받았지만 폭력 성향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정당한 자기방어를 범죄로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유족 측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으로 법무부 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한다”며 연방 법원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밀워키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비무장 흑인을 무참히 살해한 경찰의 자기방어를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앞선 세 차례 불기소 사례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전미 유색인 지위향상협회(NAACP)는 “퍼거슨, 뉴욕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결정은 인종을 차별하는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수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밀워키에서는 검찰 발표를 앞둔 지난 19일 매니의 처벌을 촉구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과격 시위로 인해 이미 74명이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위스콘신주 방위군은 경찰 요청을 받는 즉시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소집령이 내려진 상태다.

뉴욕에서는 공권력 남용 금지를 주장해 온 빌 드블라지오 시장이 지난 20일 발생한 뉴욕경찰 총격 살해사건을 계기로 역풍을 맞고 있다.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이 6만건을 넘어서는 등 사퇴 압박이 거세지자 드블라지오 시장은 “숨진 경관의 동료 및 가족들이 애도할 수 있도록 논쟁을 뒤로 하고 적절한 때에 대화로 풀어가자”며 비난 여론 진화에 나섰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