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혁 시동… 실행 방안엔 ‘딴마음’

입력 2014-12-24 03:02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네 번째),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다섯 번째), 김영배 한국경총회장 직무대행(여섯 번째) 등 노사정 대표자들이 23일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향에 합의한 뒤 손을 엇걸어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곽경근 기자
“이제 시작 수준이다. 앞으로가 더 어려운 것도 안다. 그러나 노와 사가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합의한 것만 해도 뜻 깊은 일이다.”

23일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등 노사정 3주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등 한국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에 인식을 같이하며 구조개혁의 큰 방향에 합의했다. 극심한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 한국의 노사 관계와 정부에 대한 불신 등을 감안할 때 노사정이 함께 해법을 찾겠다고 뜻을 모은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날 합의는 말 그대로 ‘선언문’에 가깝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임금체계 개편이나 정규직 처우 축소, 통상임금 현안 등 개별 과제에 대한 이견은 앞으로 조율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유연성’ 등 예민한 단어 피해 ‘타협’…실행방안은 ‘동상이몽’=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위원회를 열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기본 원칙과 방향’에 대한 기본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합의문에서 “한국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사회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다”면서 “현재와 미래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노사정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문제와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사회안전망 정비 등을 5대 의제로 선정하고 비정규직 고용 규제 개선, 노동 이동성과 고용·임금·근무방식 등 노동시장의 활성화 등 14개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지난 19일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에서 10시간에 걸친 격론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던 노사정이 극적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노사 양측이 서로 예민한 문구를 피하는 데 합의한 덕이 크다. 한국노총 측이 강하게 반발했던 ‘노동 유연성 제고’ ‘고통 분담’ 등의 표현은 ‘노동 이동성 제고’와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나눈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반대로 노동계가 요구한 ‘노동소득 분배율 개선을 위해 노사가 노력한다’는 문구도 포함되지 않았다.

문구가 애매한 표현으로 바뀌다보니 향후 이를 놓고 각자 이로운 쪽으로 해석하며 대립할 여지를 남겼다. 14개 세부과제 역시 각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방법론은 노사정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한국노총과 한국경총 등 노사 대표로 참여한 단체의 대표성에 대한 논란도 남아 있다.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위의 논의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과 정치적 발판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비정규직 기한 연장 등 정부안 발표 방침…노동계, “철회하라”=정부는 일단 노사정위의 기본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그동안 보류해뒀던 정부안 추진에 속도를 붙이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정규직 대책이다. 정부는 지난 10월부터 미뤄져 온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조속히 마무리해 오는 29일 내놓을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기존 2년으로 제한된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일정 조건에 한해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동계 반발이 거세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생존권 위협하는 사용기간 연장을 철회하라”면서 “특히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노사정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더 이상 노사정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비정규직 대책을 노사정위 구조개선 특위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안을 일방 추진하자는 게 아니다. 초안 차원에서 노사정위가 함께 논의해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준비하면서 정작 비정규직의 전체 규모를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얘기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대우를 어떻게 높이고 전체 규모는 얼마나 줄일지 등에 대한 얘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함께 논의돼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