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언론사마다 한 해를 결산하는 특집을 내고 교계 몇몇 기관에선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있다. 그 중에 문화선교연구원이 발표한 10대 뉴스가 눈길을 끈다.
10대 뉴스는 이렇다. 방송 ‘미생’, 영화 ‘명량’, 도서정가제, 세월호 사건,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퇴, 한국 조직 사회 속 ‘인권’ 침해 사태, 기독 영화의 다양성-새로운 담론을 꿈꾸다, 기독교 이슈-동성애 논쟁, 세월호와 구원파-물신 숭배와 기독교 신앙의 본질, 프란치스코 교황-소통과 공감. 이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소통과 공감’으로 정의하고 세상과 상호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 대목이 눈에 띈다.
‘소통과 공감’은 비단 어제오늘의 이슈가 아니다. 인류의 오랜 숙제이고, 기독교회도 태생부터 천착해온 과제이다. 프랑스 지식인 시몬느 베이유도 가난한 근로자 계층이 소속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상실감에 공감하는 데서 사고를 시작했다. 뿌리 뽑힌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불행은 ‘뿌리박기’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보았다.
베이유는 ‘소통하기’ 위해서 철학교수직을 버리고 르노 자동차 회사의 근로자 보조원으로 입사했다.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노동자들의 절망과 공허를 함께 겪었다. 게다가 그녀는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손을 갖고 있었고, 심각한 만성두통으로 고생했다. 나중에 ‘노동일기’를 출판해서 그 시절에 겪었던 심리적 정신적 박탈감을 자세하게 적었다. 그는 물신화된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에 절감하고 영혼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데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어찌 보면 한민족은 ‘뿌리 뽑힌 민족’이 아닐까. 반도에 산다고 하지만 분단 70년에 막혀 우리는 섬나라 같은 처지에 있다. 지정학적 위기로 수차례 민족의 뿌리가 뽑혔다. 조선말 기근을 피하던 유랑민을 들 것도 없다. 일제하에서는 살길을 찾아서 만주와 하와이로 이민을 했다. 지금은 750만명에 달하는 한민족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1944년 이후 9만명 이상이 강제 징집됐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794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이 강제징용으로 한반도를 떠났다. 가장 큰 비극은 6·25전쟁일 것이다. 전쟁으로 민족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되었고, 1000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은 남과 북으로 떠돌았다. 60년대 이후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90%를 넘던 농민들이 대거 고향을 떠났다. 2011년에 이르러 불과 5.9%의 인구만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뿌리 뽑힌 한민족에게 기독교는 영혼의 고향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해방 이후 월남민들이 세운 교회들이 급성장한 것은 교회가 고향을 대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0년대 이후의 민족복음화 운동도 도시화와 산업화 물결을 탄 것이다. 경제성장과 교회성장이 동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수세대 동안 교회는 영혼의 텃밭으로 뿌리 뽑힌 민족에게 소망을 준 것이다.
그러나 다음세대에 영혼의 뿌리가 제대로 내릴지 염려된다. 정보화 시대에 영혼의 텃밭이 안녕하지 못한 탓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에는 물신숭배가 팽배해졌다. 성적 쾌락을 부추기는 광고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정치적인 편향을 조장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작은 텃밭이라도 새롭게 가꾸었으면 좋겠다. 텃밭 가득한 풀꽃으로 풋풋한 향내가 넘쳤으면 좋겠다. 다음세대가 영혼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새 텃밭에서 말이다.
변창배 목사(예장통합 총회기획국장)
[시온의 소리-변창배] 영혼의 뿌리 내리기
입력 2014-12-24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