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헌법재판소

입력 2014-12-24 02:10

헌법재판소(헌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제2공화국 때다. 4·19혁명으로 이뤄진 3차 헌법 개정에 따라 헌재 제도가 도입됐고 이듬해 헌재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헌재는 구성 일보 직전에 5·16쿠데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 27년이 흐른 1988년 헌재는 6·10항쟁의 산물로 부활하게 된다. 87년 9차 헌법 개정을 통해 헌재 제도가 다시 도입됐고 이듬해 헌재법이 발효됐다. 그해 9월 재판관 9명이 임명되면서 헌재는 역사적인 탄생을 알렸다. 세계 최초의 헌재는 1920년 오스트리아에서 설립됐지만 실질적으로 제 역할을 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인 51년 독일의 연방 헌재가 구성되면서부터다.

초창기 우리 헌재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재판관 중 3명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다보니 초기에는 재판관 자체가 대법관 임명에서 밀린 사람들이 가는 자리로 인식됐다. 대법원에 눌려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헌재가 헌법 제6장에 명시된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다섯 가지의 헌법재판 권한을 행사하면서 막강한 사법 권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정부 때다. 정치권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모조리 헌재로 향했다.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과 그해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을 거치며 헌재의 몸값은 날로 치솟았다. 특히 두 사건은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헌재가 정치적 핫이슈에 잇따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최근에는 10월 현행 선거구 헌법불합치 결정,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으로 헌재의 파괴력은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이러다보니 독립적인 헌법수호기관인 헌재가 헌법·법률의 구체적 해석과 적용을 맡는 대법원보다 더 막강해졌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권력’ 논란까지 휩싸인 헌재에 정치적 쟁점들이 자꾸만 쌓여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정치권이 첨예한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