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발했나.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행위에 굉장히 분노했다.”(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를 개인적으로 아는가.
“모른다.”(박완석 자유수호청년단 대표)
-피해자와 관계가 없는데 왜 고발했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명예훼손하는 건 국격 훼손이라고 생각한다.”(박 대표)
세월호 참사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대한항공 ‘땅콩 회항’, 비선실세 의혹,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의혹 등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각종 시민단체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고발장을 들고 찾아가면 검찰과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또는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한다.
이런 수순은 점점 하나의 ‘공식’처럼 돼 가고 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2일 “사회운동이 과거엔 시위나 집회 같은 저항형 운동이었는데 민주화 이후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고발형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제 기자회견이나 시위로 입장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수사기관에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지난 19일 통진당해산국민운동본부는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통진당 국회의원과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다른 보수단체 활빈단도 같은 고발장을 제출했다. 종북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황선(40·여) 신은미(53·여)씨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 경찰 수사를 촉발시킨 것도 활빈단이었다.
이처럼 이슈 발생→고발→수사로 이어지는 흐름은 과거엔 참여연대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같은 진보단체가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보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홍정식 활빈단 대표는 “사람들 모아 기자회견이나 집회·시위를 하면 국물이라도 먹여야 하니까 돈은 돈대로 들고 효과는 적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발 형식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권력 없는 단체가 아무리 외쳐본들 이뤄지는 게 없다. 당장 검찰이나 경찰에서 압수수색이나 수사에 들어가니까 고발하는 게 낫다”고 했다.
실제로 이들 입장에서 상대를 공격하기엔 고발만큼 강력한 수단이 없다. 형사소송은 민사소송처럼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돈을 들일 필요 없이 고발장만 내면 수사기관이 알아서 진행한다. 상대에게는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다.
시민단체가 고발에 나서는 이면에는 관리·감독 당국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권력형 비리 같은 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특히 수사를 안 한다. 의혹이 짙고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되면 검찰 수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도 고발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활빈단 홍 대표도 “검사들이 일을 안 하니까 고발하는 것”이라며 “꼭 고발을 해야 수사가 이뤄지더라”고 했다. 국토교통부가 초기에 부실하게 대응한 땅콩 회항 사건 등은 이런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
노선이 다른 상대에 대한 적대감도 고발이 난무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진보단체는 정부 측과 재벌을, 보수단체는 야당과 진보 진영을 상대로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 윤 교수는 “정치인이나 갈등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시민단체가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고발은 영세한 시민단체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자신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는 방편으로 이용되는 측면도 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시위에 유모차를 끌고 참석한 여성들을 고발한 보수단체 중에는 새마을포럼이나 수컷닷컴처럼 생소한 단체가 많다. 2000년 애국청년단으로 시작해 이름을 세 차례 바꾼 자유청년연합은 최근 잦은 고발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고발은 수사기관을 재촉해 부조리를 바로잡는 순기능이 있지만 문제도 적지 않다. 사회를 정치 성향에 따라 양분하고 갈등을 증폭시켜 양보나 대화 없는 풍토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 이목이 집중된 사건은 고발을 무시하기 어려워 행정력과 혈세가 낭비되기도 한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우리 사회엔 제도가 전부인 양 여기는 태도가 있다. 시민들이 충분히 토론하도록 자율적 영역에 맡길 부분마저 법에 맡겨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창욱 황인호 나성원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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