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봉한 영화 ‘R2B: 리턴투베이스’. 약 1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흥행에는 참패한 작품이다. 이 때문에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이 영화를 전체 상영관 중 각각 22%, 15%에서만 상영했다. 반면 당시 CGV는 ‘R2B’를 전체 상영관 중 49%인 265개 상영관에 걸었다. ‘R2B’를 배급한 곳이 CGV의 계열사인 CJ E&M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계열사 상영관 밀어주기’였던 것이다.
재벌 영화관들이 ‘상영관 밀어주기’를 일삼다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2일 계열사나 자사가 배급한 영화에 스크린 수나 상영 기간 등을 유리하게 배정한 업계 1, 2위 영화관 CJ CGV와 롯데시네마에 각각 과징금 약 32억원과 23억원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과 함께 시정명령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대기업 극장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공정위에 지시한 이후 처음으로 구체적인 조치가 나온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CGV는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의 좌석점유율이 다른 영화보다 떨어지고 있음에도 스크린 수를 줄이거나 종영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계열사 CJ E&M이 배급한 영화다. 다른 극장들은 이미 스크린에서 내렸음에도 총 네 달을 상영했다. 종영 무렵엔 공짜 표를 뿌리기도 했다. 당시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광해’가 ‘CJ가 만든 1000만’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롯데시네마도 2012년 개봉한 영화 ‘돈의 맛’에 상영관을 몰아줬다. 이 영화는 같은 회사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흥행 영화와 비교해 보면 몰아주기 의혹은 더 짙어진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관객 500만명을 모을 정도로 흥행했지만 롯데시네마 내 상영관은 ‘돈의 맛’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공정위의 결정에 영화계는 환영의 뜻을 보였다. 영화제작가협회 배장수 이사는 “영화업계의 오랜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줘 고맙다”며 “이번 기회로 영화계의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반면 CGV와 롯데시네마 측은 시장점유율 산출 부분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향후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CGV 측은 “조치 결과에 수긍하기 어렵다”며 “최종 의결서를 보고 법적 대응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롯데시네마 측은 “공정위의 판단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법정 공방의 여지를 남겼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공정위의 조치와 별개로 동의의결을 신청할 당시 제출한 영화 시장 개선방안을 이행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앞서 CGV와 롯데시네마가 신청한 동의의결을 거부한 바 있다. 동의의결은 기업이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 방안을 내놓으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시정 방안에는 대기업 배급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미 거부된 동의의결의 시정 방안을 두 업체가 이행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대기업 영화의 스크린 비율은 제한하되 상영 기간은 늘려주는 식으로 시정 방안에 구멍이 많다는 비판도 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몰아주기 상영 ‘재벌영화관’ 과징금 철퇴
입력 2014-12-23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