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치와 20여년 동고동락한 남자 박완수 세계김치연구소장

입력 2014-12-24 02:22
김치와 함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박완수 세계김치연구소장은 "김치의 글로벌화를 위해선 김치가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지구촌 만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김치학' 정립과 김치산업 육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김치는 대한민국 대표 음식이다. 매 끼니 각 가정의 밥상마다 빠지는 법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 김치 종류는 44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지역별 계절별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고 상품화된 것은 20여개다. 통배추김치가 가장 많고, 열무김치 총각김치 보쌈김치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동치미 고들빼기김치 섞박지 등 이다. 3000년 이상 지속돼온 김장은 요즘도 우리나라 가정의 중요한 연례행사다.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김장이 등재된 건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전승 주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장철은 다소 지났지만, 김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완수 세계김치연구소장을 만났다. 지난 20여년간 김치 관련 연구를 선도해온 그는 지금도 김치의 글로벌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김치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1990년 가을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응용미생물연구실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을 처음 연구하게 됐다. 당시 원장이 김치나 불고기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획안을 내보라고 했다. 그때 김치를 14개 분야로 나눠 부서의 벽을 넘어서는 기획안을 제출했고, 그것이 채택됐다. 그것이 김치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그 이후 김치 연구가 확대되면서 김치 관련 부서의 리더로 일하기도 했고, 농림부와 과기부 등 정부 부처의 김치 관련 대형 과제들을 기획하거나 연구하는 일을 하게 됐다.”



-후회는 안 하나.

“결국 세계김치연구소장을 연임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접어든 김치 외길 인생이었지만, 결코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정말 괜찮은 인생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김치를 담글 줄 아나.

“물론이다. 김치 홍보행사장에 가서도 참석자들과 함께 김치를 담그곤 한다. 김치를 담글 줄 몰라서야 어떻게 김치연구소를 이끌어갈 수 있겠나. 하지만 유명한 남자 셰프들이 집에서 요리를 잘 안하는 것처럼 집에서는 김치를 담그지 않는다(웃음).”



-김치가 사람 몸에 정말 좋은가.

“우선 원료적 측면에서 보면 녹황색 채소에다 마늘과 생강 파 등이 들어가 비타민과 항암 성분이 많다. 또 김치에는 살아 있는 발효 미생물인 젖산균이 풍부해 장의 운동을 활성화하고 노화를 억제해준다. 그리고 김치를 섭취하면 혈압이 낮아진다.”



-김치가 짜서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

“짠 음식을 먹는 아시아인 가운데 고혈압이나 위암 환자가 적지 않고, 우리나라의 경우 김치가 소금 공급의 주범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나트륨과 칼륨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체 내의 나트륨 배설은 칼륨의 섭취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김치의 나트륨과 칼륨 비율은 다른 가공식품에 비해 괜찮다. 김치에 들어 있는 칼륨이 체내 나트륨 배설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최적의 칼륨과 나트륨 비율을 찾고 있으며, 그 결과를 김치 제조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소금은 생존을 위한 필수 영양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섭취량을 무조건 줄이기보다 미네랄이 함유된 양질의 소금을 섭취하는 게 좋다.”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나.

“정말이지 오묘한 게 김치의 맛이다. 김치는 살아 있는 발효 식품이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선 발효 속도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온에서 천천히 발효되도록 하는 게 필수다. 그래야 ‘이형 젖산균’이 증식해 김치의 맛을 좋게 한다.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다. 온도는 물론 염도 관리도 중요하다. 또한 품질이 좋은 품종의 배추를 선택해야 한다. 배추는 1년에 여섯 번 나온다. 봄이나 여름에 생산되는 배추는 수분함량이 높고 당도가 떨어지나, 가을이나 겨울에 생산되는 배추는 수분함량이 낮고 당도는 높다. 계절별 배추의 특성에 따라 양념의 비율을 조절해야 한다. 마늘과 젓갈도 싱싱한 것을 써야 맛이 좋아진다. 소금은 정제염보다 천일염을 쓰는 게 좋지만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설탕이나 사과를 비롯한 과일을 첨가하는데 주의해야 한다. 설탕은 발효를 빨리 진행시켜 김치를 빨리 시게 만든다. 또 과일을 넣으면 과일의 펙틴분해 효소로 인해 배추의 섬유질이 분해돼 김치가 쉽게 물러지기 때문이다. 바로 먹을 김치라면 설탕이나 과일을 넣어도 괜찮지만, 오래 두고 먹을 거면 넣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식사할 때 김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있나.

“상을 차릴 때 냉장시설에 저장돼 있는 김치를 내놓는 순서도 중요하다. 다른 반찬과 밥을 다 차려놓은 뒤 마지막으로 김치를 썰어 내놓아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냉장 저장 중 발생된 이산화탄소가 김치의 배추조직과 국물에 녹아들어 상큼한 청량미를 부여하는데, 온도가 오르면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달아나 청량미가 떨어져 맛이 반감된다. 공기와의 접촉 시간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김치를 먹어야 맛이 더 좋다. 고급 한식음식점의 경우 상을 차릴 때 자세히 관찰하면 김치를 가장 나중에 내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김치연구소에서는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세계화보다는 글로벌화라는 표현이 정확할 듯하다. 김치의 글로벌 식품화를 위해 김치의 대사기능성 등 우수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세계적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게재해 널리 홍보하고 있다. 아울러 해외에서의 김장문화 체험 행사나 세계식문화 석학들을 초청한 심포지엄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김치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글로벌화가 가능하다. 김치는 세계 만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세계 만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난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김치학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어떤 성과를 거뒀나.

“김치학(Kimchiology)은 김치와 학문을 합친 말로, 김치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난해 11월 최초로 소개했다. 식품으로서의 김치를 연구하는 자연과학 영역의 김치과학 분야와 김치 문화를 다루는 김치인문학 분야로 나눌 수 있다. 김치의 원료에서부터 담그기 운송 포장 저장 유통 그리고 김치를 먹는 느낌 등 김치의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농학과 생물학 미생물학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등 모든 학문이 망라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치학 심포지엄을 통해 먹는 음식으로서의 김치뿐 아니라 학문 주제로서의 김치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과 호응을 유도했으며, 김치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고 본다. 앞으로도 김치학 심포지엄을 계속 개최할 계획이다.”



-김치의 향이 강하고, 맵거나 짜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한 복안은 있나.

“김치에 대한 외국인들의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세계 지역별 문화권역별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김치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자극적인 향이나 맛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마늘이나 생강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사용하는 방법, 젓갈이나 액젓 대신 육수를 넣는 방법,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함량이 낮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우리나라 김치의 중국 수출은 막혀 있는 반면 중국산 저가 김치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중국산 김치는 ㎏당 평균 0.5달러로 매우 싸다. 그래서인지 매년 20만t 이상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중국산 김치 수입 규모는 1억1700여만 달러어치다. 우리나라 수입 김치는 전부 중국산이라고 봐도 된다. 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중국산 김치가 더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값싼 중국산 김치와 차별화된 상품 개발이 절실하다. 김치의 외양과 제조 공정 혁신을 통해 지금까지 보아온 김치나 깍두기와는 다른 신개념 김치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對)중국 김치 수출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대장균 규제 문제가 해결된다면 중국으로의 진출이 용이해질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중국과 꾸준히 협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김치의 수출 현황은.

“최대 수입국은 일본이다. 미국 홍콩 대만 호주 등으로도 수출되지만 대일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런데 최근의 엔저 현상 등으로 인해 김치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수출은 2012년보다 16% 정도 줄었다. 올해 역시 예년 수준을 밑돌 전망이다. 하지만 수출 대상국이 다변화되고 있어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0년에는 김치 수출 대상국이 54개국이었으나 올해 64개국으로 늘었다.”



-중소 김치업체도 돕고 있다고 들었다.

“중소 김치업체를 위해 지식·기술지원 사업, 위생안전 지원 사업, 수출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품질관리 등을 위한 경영 컨설팅과 현장에서의 교육지도 그리고 해외 판로 개척을 돕고 있다. 지난 3월엔 ‘제3회 중소·중견 김치업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연·관 워크숍’을 열어 중소업체의 애로사항을 듣고 현실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소장 재임 기간 중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여전히 홀대받고 있는 ‘김치학’이라는 학문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싶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김치인문학’을 정착시키려면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국내 대학에서 김치학이라는 학문이 강의과목으로 개설되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는 김치산업을 육성하는 일이다. 현재까지 김치업체 하면 제조업이라는 편협한 시각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치 저장을 위한 기계산업은 물론 관광 및 문화산업과의 연계도 충분히 꾀할 수 있다. 김치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도 나와야 한다. 김치산업의 영역은 매우 넓다.”

박완수 소장은 美유학 후 김치와 인연… 정부연구기관 설립 견인

박완수(59) 세계김치연구소 소장은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식품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0년 한국식품개발연구원(현 한국식품연구원) 응용미생물연구실 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김치 업무를 시작했다. 식품연구원에서 김치연구팀 팀장, 김치연구단 단장, 김치세계화전략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1월 1일자로 세계김치연구소가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설립되는 데에도 기여해 세계김치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선임됐다. 이어 지난해 10월 임기 3년의 2대 소장으로 다시 뽑혀 세계김치연구소가 세계 일류 발효식품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김치 연구의 메카’ 세계김치연구소는 광주광역시 김치로에 위치해 있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